최근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후보자들이 치과주치의, 노인주치의, 소아주치의, 반려동물주치의 등 앞다퉈 주치의 관련 공약을 내놓고 있다. 또한 정부도 다음 달부터 장애인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을 시행한다고 밝혀 ‘주치의제도’에 대한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에 지난 18일 일차의료연구회와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가 발간한 '주치의제도 바로알기'를 바탕으로 주치의제도에 대한 궁금증과 쟁점을 짚어봤다.
◇개인·가족이 ‘동네의사’ 등록...지속 관리 가능하나 환자선택권은 제한
주치의제도는 지역사회 주민 개인 또는 가족이 일차의료 의사(주치의)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험사 또는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다만, 국내 의료계에서는 주치의제도가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의료의 질을 낮출 수 있다는 단점도 지적되고 있다.
기존의 단골의사와 다른 점은 환자가 원하는 의사를 ‘등록’한다는 점이다. 환자가 지역사회 내에서 원하는 의사를 등록하고, 건강에 대한 문제나 질병이 있을 경우 해당 주치의를 방문해 상담과 치료를 받는 개념이다.
주치의제도 내에서 등록 주치의는 변경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특정질병에 따라 여러 의료기관에 다니는 것은 제한된다. 또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치의를 거쳐야 한다. 환자는 주치의의 ‘진료의뢰서’를 지참해야 하고, 병원에서도 적절한사유가 없으면 받아주지 않는다.
고병수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장은 “의사를 등록하는 이유는 단순히 병원쇼핑을 제한뿐만 아니라 주민의 건강문제를 전인적이고 포괄적으로 다루겠다는 의미”리며 “또 의료이용 제한을 통해서 무분별하게 큰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되고, 단과전문의들은 중증질환이나 난이도가 높은 질환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주치의의 과소진료와 길어지는 대기시간 우려
주치의제도는 주치의가 되겠다는 의사와 정부의 계약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주치의제도를 도입한 일부 나라에서는 주치의들이 공무원 신분인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주치의는 개인의원을 가진 자영업자로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과 계약을 맺고 진료비나 지원금을 받는 형태로 운영된다.
과거 영국의 경우 오후 5시면 의사들이 칼같이 퇴근하거나 검사나 약 처방하는데 소극적으로 나와 제약을 받은 바 있다. 이와 관련 일차의료계는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정부가 보상제도를 도입해서 저녁시간까지 진료를 하거나 질환관리가 잘되면 합당한 보상을 해주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이들은 “의료의 질 평가는 종합병원뿐 아니라 지역의 일차의료기관에서도 이루어져서 진료의 질이 낮다든지, 과소진료를 하는 문제는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시간에 대한 우려도 있다. 주치의제도를 시행하는 나라에서는 긴 진료 대기시간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이들 나라에서는 위급한 질환인 경우 당일진료도 가능하지만 대개 3~4일 정도 대기시간이 발생하는 편이다.
일차의료계에서는 주치의제도에서는 긴 대기시간을 감수해야하는 단점이 있지만, 이를 상쇄할만한 장점도 있다고 말한다. 임형석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주치의제도를 시행하는 나라의 경우, 환자 당 진료시간이 15~20분 전후로서 충분히 진찰하고 설명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좀 더 기다린다고 해도 충분한 시간동안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빠르고 짧은 진료보다 나을 것”라고 설명했다. 또한 “급한 경우에는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진료가 가능하다. 대기시간 동안 병이 악화되는 것처럼 여겨지면 주치의와 전화 상담 후에 당일진료를 받거나 응급실로 가도록 조치를 취하게 된다”고 전했다.
◇무조건 주치의 거쳐야 할까…의료비 부담도 걱정
응급상황의 경우에는 주치의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응급실에 방문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주치의가 보다 전문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 한해 특정 전문의에게 연결된다. 이를테면 허리디스크 환자의 경우 먼저 주치의의 진료를 받은 후에 정형외과 전문의를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치의를 거쳐야만 특정 전문의에게 갈 수 있는 체계에서 환자는 주치의와 해당 전문의 모두에게 진료비를 지불해야 한다. 이 때문에 진료비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이같은 우려에 대해 일차의료계는 수가체계 개정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홍승권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지금의 진료비 지불제도인 행위별수가제를 그대로 둔다면 본인부담금이 커지는 게 맞다”면서도 “중복진료와 과잉진료를 미연에 방지하는 특정 의료이용체계를 만들고, 수가체계를 변경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치의에게 등록 주민 수에 맞게 인당정액제로 제공하면 주치의 진료를 받을 때 진료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 또 의뢰를 받고 특정 전문의에게 갈 때도 지금보다 낮은 진료비를 내게 되니 부담이 이중으로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일차의료계는 주치의제도가 도입되면 여러 병원을 다니며 생기는 중복진료, 중복검사, 투약 등이 이뤄지지 않아 전반적인 의료비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나를 잘 아는 의사와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과잉진단과 고비용 의료서비스를 줄이고, 질병예방을 도와 건강을 증진시켜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 환자에게 좋은 점은 무엇?
주치의제도를 통해 의료이용자가 얻는 장점은 무엇일까. 주치의제도에서 환자들은 임의대로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없게 된다. 또 의료비 부담이나 의료의 질 하락 등 우려와 제도의 변화로 나타나는 혼란도 감당해야 한다.
최용준 한림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는 주치의제의 주된 장점으로 ‘원스톱 서비스’를 지목했다. 개인이 가진 건강상 문제를 믿을만한 의료인이 총체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또 입원이나 응급의료, 그 밖의 전문 의료가 필요할 경우 언제든 주치의를 통해 의료이용을 안내받을 수 있다.
주치의가 지역사회의 단골의사와 다른 점은 의사에게 환자 개개인에 대한 책임감을 부과한다는 점이다. 최 교수는 “결국 환자들에게 필요한 건 책임감 있는 의사”며 “내 경험에 비춰보자면 과거 6년 동안 단골의원에 꾸준히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한 번도 나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없다. 환자는 단골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사는 환자 개인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것이다. 주치의제는 의사와 환자 사이를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로 엮어준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도가 바뀌었을 때 불편함 눈에 잘 띈다. 하지만 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편익은 경험해보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우려는 경험하지 못함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한번 밖에 만나보지 못한 환자가 응급상황에서 의사에게 급히 연락했을 때 조언할 수 있는 의사는 드물다. 단순히 응급실에 가라고 안내하는 것이 최선이다. 환자를 잘 안다는 점은 환자에게도 중요하지만, 의사에게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회장은 “일차의료의 장점은 경험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밤중에 아이가 열이 난다는 환자들의 전화가 왔을 때 환자를 아는 주치의라면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주치의제도에는 장단점이 두루 내재돼있다.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결국 국민의 손에 달려있는 셈이다. 고 회장은 “주치의의 장점이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오랜 기간 연구를 통해 좋은 방향임을 자신한다. 우리 국민들도 주치의제를 중심으로 제대로 된 일차의료를 경험했으면 좋겠다”며 “충분한 시간동안 단계적으로 도입한다면 한국의 현실에 맞는 훌륭한 제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