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로그인] 엔씨소프트 김택진의 ‘기술기업’ 꿈

[게임 로그인] 엔씨소프트 김택진의 ‘기술기업’ 꿈

기사승인 2018-04-28 05:00:00

엔씨소프트, 지난해 연간 매출 약 1조7600억원으로 국내 게임사 중 세 번째 매출 규모를 자랑한다. 90년대 말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흥행에 따라 2000년대 대표적인 대형 게임사로 성장했다. 주식 시장에서도 게임 업계 대장주 자리에는 항상 엔씨소프트가 있었다.

그런 엔씨소프트가 최근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 중 하나는 인공지능(AI)이다. 약 2년 전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가 바둑기사 이세돌을 상대로 승리를 이끌면서 본격적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것이다.

▶ ‘공학도’ 김택진 대표의 의지

엔씨소프트가 AI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알파고 데뷔 이전인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빅데이터를 스스로 분석‧학습하며 발전하는 머신러닝 학습법이 AI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 것으로 내다보고 연구 조직을 구성, 현재 100명 이상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AI센터와 NLP(자연어처리)센터로 구분되는 엔씨소프트의 AI 연구 과제는 최근 공식적으로 외부에 공개됐다. 게임 AI뿐 아니라 일러스트 등 각 개발 단계 작업을 자동화 할 수 있는 솔루션, 음성을 인식하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거나 정보 요약 등 콘텐츠 생성까지 가능한 범용적 AI를 연구하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AI에 대한 접근 방식은 해외에서는 구글, 국내에서는 네이버 등으로 대표되는 IT(정보기술) 업계의 그것과도 유사하다. 게임사라는 제약 없이 본격적인 기술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엔씨소프트 측도 ‘기술 기업’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재준 엔씨소프트 AI센터장은 “엔씨소프트의 AI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 도구”라고 설명했다.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가 2년 전 강조한 ‘도구로서의 AI’와도 같은 맥락의 표현이다.

게임사로 잘 알려진 엔씨소프트는 사실 초창기 소프트웨어(SW) 개발 IT 기업 형태로 시작했다. 게임이 갖는 문화 콘텐츠 측면 뒤에는 SW 개발이라는 IT 속성이 깔려 있는 셈이다. 때문에 이 같은 기술 기업으로서의 행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엔씨소프트의 창립자인 김택진 대표는 공과대학 전자공학을 전공한 ‘기술자’다. 업계에 따르면 게임에 있어서도 개발사로서의 경쟁력을 내세워온 만큼 AI 연구도 김 대표의 기술력 확보에 대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 기술력이 항상 사업적 성과 담보하지 않는다

엔씨소프트가 이처럼 본격적으로 원천기술 확보에 나선 것은 게임 업계에서는 선도적인 행보다. 하지만 IT 업계 전반을 볼 때는 경쟁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방향이기도 하다.

국내 IT 업계에서 본격적으로 AI를 비롯한 기술 연구에 나선 대표적인 기업으로 네이버가 꼽힌다. 지난해 초 분사한 네이버랩스를 중심으로 머신러닝과 신경망번역(NMT) 등 AI 기술부터 자율주행, 로보틱스까지 ‘생활환경지능’이라는 주제 아래 공격적인 기술 기업의 모습을 보여 왔다.

네이버는 확보한 기술력을 활용해 AI 번역기 ‘파파고’부터 각종 포털 서비스의 AI화, AI 플랫폼 ‘클로바’ 기반 스마트스피커 등 각종 제품‧서비스를 내놨고 해외 기업들이 주도하는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에 ‘웨일’을 선보이는 등 도전적 모습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네이버의 기술력이 시장에서 사업적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력을 접목한 제품‧서비스를 기획‧생산하고 이를 소비자까지 연결할 수 있는 판로 확보 문제가 있다. 네이버의 경우 이 같은 문제로 고심하다 LG의 손을 잡기도 했다.

반대로 카카오처럼 후발주자로 뛰어든 경쟁자도 ‘카카오톡’과 같이 로컬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서비스를 활용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과의 협업을 이끌어내는 등 우위를 점하는 것이 가능하다. 소비자는 세부적인 기술 격차보다 어떤 유용한 서비스를 어떤 제품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가를 더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즉 AI 기술 경쟁에 뛰어든 엔씨소프트도 미래에 비슷한 조건에서 네이버, 카카오 등 IT업계와 직접 경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어떤 차별성과 사업적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 정체성 잃지 않아야

반대로 게임사의 위치에서 기술에 접근하는 예도 있다. 국내 3대 대형 게임사로 엔씨소프트와 경쟁 관계에 있는 넷마블과 넥슨이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이 말하는 AI는 미래 게임 경험을 바꿔놓을 ‘지능형 게임’으로 귀결된다. AI가 접목된 게임이 보다 더 쉽고 재미있게 사용자와 ‘놀아’ 줄 수 있도록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넷마블은 시장 전문가인 방준혁 의장의 분석에 따라 철저하게 사업 전략적 움직임을 보여 왔다. 지난 수년 간 모바일 게임 시장의 성장에 집중했고 이제 중국과의 경쟁을 염두에 둔 새로운 장르와 플랫폼 전략으로 선회,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능형 게임도 이 같은 ‘사업 아이템’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넥슨은 AI를 라이브 게임 서비스에 적용하는 데 집중한다. ‘AI 기술로 사람이 생각해낼 수 없는 다양한 요인을 발견, 더 나은 게임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AI로 다양한 이용자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활용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엔씨소프트, 넷마블, 넥슨 3사 모두 게임 서비스에 AI를 활용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다만 넷마블과 넥슨이 ‘게임사로서’ AI를 활용하는 데 집중하는 반면 엔씨소프트가 기술 기업으로서 꿈을 꾸는 것은 ‘큰 그림’이 될 수도, ‘욕심’에 그치게 될 수도 있다.

엔씨소프트가 미래에 IT 업계에서 본격적인 경쟁을 벌이는 그림도 흥미롭지만 가진 자원과 인력을 지금의 맡은 분야인 게임 사업에 적절하게 배분하지 못한다면 그 정체성이 흐려질 수도 있다. 이 경우 어느 한쪽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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