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돌봄, '가족'엔 한계...긴 병에 효자 없다"

"노인 돌봄, '가족'엔 한계...긴 병에 효자 없다"

돌봄 현장, 가족·민간기관 한계 봉착...공공성 강화 요구 확산

기사승인 2018-05-09 00:24:00

“어르신을 거의 방치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긴 병에 효자 없는 거죠.”

5월 가정의 달이 다가왔지만 노인들의 내일은 여전히 어둡다. 8일 유희숙 서울요양보호사협회장은 쿠키뉴스와 만나 “노인 돌봄에 있어 가족의 노력은 한계에 다다랐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인들에게 ‘가정’은 더 이상 안전한 울타리가 아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노인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을 부양할 젊은 세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해 노인인구가 14%이상인 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7년 뒤인 2026년에는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노인인구 20%)에 들어설 전망이다. 반면 지난해 출산율은 1.05명에 그친다. 또한 기성세대의 노후준비 부족과 젊은 세대의 취업난 등 가정에서 ‘어르신’을 보살필 여유도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인 돌봄 현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벌써 피부로 와 닿고 있다. 유 회장은 “노인요양시설에 계신 분들은 그래도 따뜻한 세끼 식시와 돌봄 케어를 받고 지내신다. 그러나 집에서 재가(在家)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 중에는 거의 방치상태인 분들이 많다”며 “아무래도 가족들은 생업이 우선이기 때문에 여유가 없다. 현장에서 보면 가족들이 어르신의 상태가 좋아지는 걸 바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고 말했다.

돌봄의 시간도 부족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기존에 하루 4시간이었던 방문요양서비스 1회 이용시간을 지난해부터 하루 3시간으로 조정했다. 대신 이용 가능일수를 늘려 총 서비스 제공 시간은 동일하게 보전했지만, 현장의 불편은 늘어났다.

유 회장은 “요양보호사가 가정에 방문하면 신체가 불편한 어르신들을 케어하고 식사나 목욕 등 일상생활을 지원한다. 필요하면 병원에 동행해드리고, 바쁜 가족들 대신 말벗이 되어 정서지원을 해드린다. 그런데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3시간은 너무 짧다”며 “4시간 동안 하던일을 3시간에 압축시켜서 일하다보니 노동강도는 세지고, 정서지원은커녕 병원동행은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돌봄 자체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현실 자체가 인권침해가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낮은 임금, 고강도 노동, 성폭력 위험 등 노인 돌봄 종사자의 노동환경도 열악하다. 2015년 기준으로 시설 요양보호사의 월 평균 임금은 115만원, 재가요양보호사는 월 평균 임금은 65만원에 불과하다.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로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병가, 유급휴가, 산재 인정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돌봄 현장에서 ‘어르신’들은 종종 성폭력 가해자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 장기요양기관 중 98%에 달하는 민간요양기관은 요양보호사를 보호하거나 성폭력 가해자를 제재할 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오히려 수익이 남는 이용자가 떨어져 나갈까봐 요양보호사에 압력을 주는 식이다. 

유 회장은 “느닷없이 가슴을 움켜쥔다든지 남편이 밤에 잘해주느냐, 너랑 살고 싶다는 둥 신체적·언어적 희롱이 빈번하다. 재가서비스의 경우 이용자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가기 때문에 더욱 피해가 많다”며 “하지만 요양보호사가 피해 사실을 기관에 보고하더라도 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용자들은 발뺌하기 급급하고, 기관은 다른 요양보호사로 교체하는 방식이라 비슷한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노인장기요양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이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인 돌봄’의 역할을 더 이상 가족이나 민간이 아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도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동안 민간이 주도하는 방식의 노인요양보험 제도가 영세기관의 과잉공급과 하향식 출혈경쟁을 부추기고, 돌봄 서비스의 질 하락과 인권침해를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국내 2만여 개의 장기요양기관 중 공공요양기관이 차지하는 비율은 2%에 불과하다.

최경숙 서울시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장은 “노인 돌봄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공공요양이 2%뿐인 것은 문제가 있다. 공공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민간의 수익추구로 이뤄지다보니 편법이 발생하고, 서비스 질이 하락하는 등 민간시장의 폐해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센터장은 “결국 피해는 어르신들에게 돌아간다. 공립요양기관, 지자체가 운영하는 요양기관을 통해 관리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 좋은 일자리에서 좋은 돌봄이 가능하다”라고 호소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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