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온 편지] 구멍 난 뼈 사이로 가족의 행복이 새어 나갔습니다

[병실에서 온 편지] 구멍 난 뼈 사이로 가족의 행복이 새어 나갔습니다

기사승인 2018-05-29 06:00:00
저는 돌봐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는 핑계로 제 한 몸 제대로 챙기지 못해 결국 가족들이 더 큰 부담을 지게 한 못난 엄마입니다.

얼마 전 저는 오른손 손목뼈가 부러져 수술을 받았습니다. 고관절 골절로 와병 중인 시어머니를 돌보러 간 날이었습니다. 

휠체어로 옮기다가 같이 균형을 잃었는데, 다급한 마음에 바닥을 짚으며 넘어진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단순한 골절이 아니라, 골다공증성 골절이라 회복이 더딜 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왜 골다공증인 걸 알면서 방치했냐는 의사선생님의 이야기는 꾸중으로 들렸고.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그 동안 식구들 돌보느라 눈 코 뜰 새 없었는데 어느 틈에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었겠느냐 따지고 싶었습니다. 

내 몸 아픈 게 서러울 틈도 없이 생활비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골다공증을 나이 들면 생기는 가벼운 병으로 생각했는데 치료비 뿐 아니라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뼈가 부러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고관절 골절로 누워계신 어머니도 거동이 매우 불편한 것은 물론, 골다공증이 심하다 보니 간병인들도 추가 골절이 발생하지 않도록 매우 주의가 필요해서 간병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습니다. 하루 8만원씩 꼬박 들어가는 간병비를 아끼자고 제가 직접 어머니를 모셔볼까 했지만, 저도 부러진 뼈가 잘 붙지도 않고 추가 골절이 생길지도 모르니 나서서 간병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돌아서니 이제는 손자가 문제였습니다. 그 동안은 맞벌이하는 첫째 딸네 부부 대신 손자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따로 도우미를 쓰려니 한 달에 60만원 가까이 나오더군요. 다음 달에 출산을 앞둔 둘째 딸은 한 달에 200만원가까이 하는 산모 도우미를 쓸 생각이라고 먼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손목뼈 치료비는 셈에 넣지도 않았는데 제 몸 아픈 것 때문에 식구들이 써야 하는 비용이 갑자기 크게 늘었습니다. 

문제는 한두 달 안에 끝날 짐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듯, 가족을 돌보는 일에서는 제가 중심이었는데 제 뼈가 약해진 것이 결국 이렇게 온 식구들에게 짐으로 돌아가 버렸네요. 

지금이라도 골다공증 치료를 열심히 받겠다고 하니, 의사 말로는 일년에 두 번 정도만 병원에 와서 주사를 맞으면 골절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좋은 약이면 진작에 주지 그랬냐고 했더니 뼈가 지금처럼 약해지기 전까지는 건강보험이 안 되는 약이라 부담스러웠을 거라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지금 고관절 골절로 누워계신 시어머니도 시작은 골다공증이었습니다. 애초에 시어머니가 건강 하셨더라면 제가 간병하다 손목이 부러질 일도, 어마어마한 간병인비 부담을 짊어질 일도 없었겠지요. 

이미 수 백 만원이 나간 후에야 편하게 치료 받을 수 있는 예방약에 보험을 해 준다니 황망합니다. 소를 도둑맞았으니 외양간을 지어주겠다는 거나 다름없이 여겨집니다. 손목뼈가 부러진 지금 저 대신 식구들 뒷바라지를 해 줄 각종 도우미를 구하느라 수 백 만원을 쓰게 되어버렸지만 어느 보험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오롯이 저희 가족 부담입니다. 차라리 나라에다 손목 치료비는 제가 낼 테니, 차라리 도우미 비용을 지원해 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제 노인이 많아져서 치매는 나라가 돌봐주겠다고 나섰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주변을 돌아보면 치매가 아니어도 나라의 도움이 절실해지는 병이 많습니다. 

골다공증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에는 골다공증을 방치했다가 뼈가 부러져 누워 있는 어르신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어르신들의 가족도 또 막막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이제껏 우리 가족은 있는 힘껏 서로를 돌봐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순간에는 다른 누군가의, 나라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언제쯤이면 우리나라가 아픈 사람이 돈 때문에 더 서러워지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서울시 박미경(가명)>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조민규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