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 열심히 일만 했는데... 무릎 관절염이 찾아왔다

젊어 열심히 일만 했는데... 무릎 관절염이 찾아왔다

황혼의 불청객, 관절염①

기사승인 2018-07-14 00:15:00

관절염 환자는 보행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일상생활 장애를 비롯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이 때문에 관절염 환자의 우울증은 일반인과 비교해 3.4배 높고, 자살사고도 1.5배 많다. 지난해 국내에선 약 376만 명이 골관절염을 앓고 있었다. 이중 74%(280만 명)은 무릎 골관절염 환자였다. 무릎 골관절염 환자의 사연을 통해 관절염의 고통과 치료의 중요성을 전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기사는 스토리펀딩 <황혼의 삶 흔드는 관절염‘> 프로젝트로도 연재된다._편집자 주

성실의 대가

열심히 일했다

요령부리지 않고,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그러나 성실한 삶의 대가는 삐걱대는 육신과 가난이었다. 몸이 성치 않은 사내는 온종일 병상에 누워 TV를 보거나 잠을 자며 시간을 보냈다. 닳아버린 톱니바퀴처럼 남자의 무릎은 닳고 닳아 있었다.

장덕찬(66·가명)씨는 목수였다. 건장한 체격의 그는 젊은 시절부터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55세까지 목수로, 이후에는 전기 공사를 하며 날이 궂거나 매서운 혹한에도 공사장을 지켰다. 한평생 120킬로그램짜리 지게를 지고는 가는 철봉에 의지해 높다란 빌딩을 오르내렸다.

매섭게 불어대는 모래바람과 작열하는 태양이 이글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에서 그는 구슬땀을 흘렸다. 사우디의 거친 모래 폭풍 속에서 묵묵히 망치질을 하고 몸무게를 훌쩍 뛰어넘는 지게를 지곤 했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서독의 한복판에서도 그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해냈다.

고된 하루를 마치면 소주 한잔에 얼큰히 취해 피로를 잊고 잠드는 것만이 사내의 유일한 낙이었다. 별다른 운동이나 그 흔한 취미하나 없이 남자는 일만하며 살았다. ‘젊음은 땀과 바꾸는 것이다. 성실은 배신하지 않는다.’ 평생 남자가 종교처럼 신봉해온 믿음, 성실한 땀의 가치.

그러나 지금 남자는 믿어 의심치 않았던 스스로의 신념을 부정한다. “젊었을 때 몸을 아끼라고 충고하고 싶다. 젊다고 몸을 혹사하면 나이가 들어 나처럼 고생한다.” 장 씨는 쓴 웃음을 지었다.

몸에 이상 신호가 온 것은 8년 전쯤부터였다. 현장에서 다리를 다친 후 상처는 아물었지만, 통증은 나날이 심해졌다. 특히 무릎이 몹시 아팠다. 바늘로 콕콕 쑤시는 것 같은 아픔은 시간이 지날수록 망치로 무릎을 내리치는 것만 같았다.

파스를 두 장, 세장 덧대 붙여도 통증은 더 심해질 뿐 나아지지 않았다. 종국에는 걷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난간을 짚고 내딛는 걸음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전해지는 통증은, 평생을 고된 육체노동으로 단련한 사내조차 도통 익숙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 밀려왔다. 그날 장 씨는 익숙한 현장 대신 병원으로 향했다. 연골주사는 그럭저럭 효과가 있었다. 일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이마저도 듣질 않았다. ‘더 이상은 어렵다는 의사의 권고로 장 씨는 왼쪽 무릎의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그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꺾인 무릎과 함께 사내의 가정도 흔들거렸다. 출가한 자식들은 저마다 살길을 찾아 떠났고, 장 씨는 부인과 갈라섰다. 성남에 월세방을 얻었다. 평생을 바쳐 모은 집 한 채와 자그마한 식당 한 칸도 시나브로 사라졌다.

그래도 살아야했다. 장 씨는 환갑을 넘어 온전치 못한 몸으로 매일 12시간씩 경비원으로 근무 했다. 버틸 만 했다. 아니, 버텨야했다. 과거 현장에서 일할 때보다 몸은 덜 힘들었지만, 잠을 못자는 건 곤혹이었다. 낮밤이 바뀌어 집에 돌아오면 안주도 없이 소주를 들이키곤 잠을 청했다.

불행은 연이어 찾아왔다. 이번에는 오른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당장 병원비 걱정부터 들었다. 겁이 났다. 살길이 막막했다. 보다 못한 자식들이 수술비를 마련해줬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그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돌아갈 곳도 없었다.

한평생 지독하게 가난했다. 찬바람을 피할 방 한 평, 배곯지 않을 쌀 한줌을 버느라 내 몸을 챙기지 못했다. 그렇게 발버둥을 쳐도 가난을 벗어나진 못했다. 늙고 병든 아비는 자식들에게 짐이다.”

장 씨는 무릎이 온전했다면 경비원으로 근무 계속 했을 거라고 했다. 그는 한 달을 꼬박 일해 150만원을 받았다. 50만원의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은 70만원. 좋아했던 술도 끊고 지인들과의 만남도 멀리하고 돈을 모았다. 미혼인 막내의 결혼 자금에 보태려 했던 소박한 꿈은 무릎 수술로 산산이 깨졌다.

저번에 모처럼 아이들이 병문안을 왔었다. 애들이 돌아가고 나서 약이라도 먹고 그만 눈을 감았으면 싶었다. 직업 없지, 돈도 없지. 폐만 끼치고 살아있는 것 같다.”

장 씨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남자는 초면의 기자에게 한 번도 꺼내본 적 없는 속마음 이야기를 내어놓았다.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남자는 미련하게 일만 하며 살아왔다. 열심히 살아온 삶이었다. 기자는 이야기를 마친 장 씨의 손을 잡아주었다.

치료와 예방도 때가 있다

앞선 장 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무릎 골관절염은 중장년층 환자들에게 상당한 고통을 준다. 안타까운 점은 환자들 상당수가 병이 악화된 상태에서야 병원을 방문한다는 점이다. 최근 유전자 치료 등 관절염에 대한 사전예방 및 치료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환자들에게 이러한 치료법은 아직도 거리가 멀다.

경봉수 바른세상병원 원장은 관절염 환자들 상당수가 악화된 상태로 병원에 찾아온다며 안타까워했다.

관절염은 50~60대부터 증상이 시작됩다. 여러 치료방법이 있지만 마지막에 인공관절수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구적인 것은 아닙니다. 인공관절도 수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치료는 없다. 관절염의 치료와 예방은 적절한 시기에 해야 하지만, 바쁘고 비용 부담 등의 이유로 참다 내원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태로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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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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