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불성 주취자, 무조건 응급실로? "응급의료현장, 주취자 대책 필요"

인사불성 주취자, 무조건 응급실로? "응급의료현장, 주취자 대책 필요"

구급대원 폭력 가해자 92%가 주취자…주취감경조항으로 처벌도 미흡

기사승인 2018-07-14 08:44:54

“술이 문젭니다. 저는 이 사진을 보고 웃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13일 국회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응급의료현장 폭력추방을 위한 긴급정책토론회에서 류현욱 대한응급의학회 법제이사(경북대병원)는 “응급의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패러디 사진 한 장에 담겨있다” 이같이 말했다.

경찰이 술에 취한 주취자를 병원 응급실로 인계토록 하는 제도(경찰관무집행법 4조)로 응급실이 ‘술 깨는 곳’으로 인식 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는 술에 취한 환자가 의사를 폭행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류 이사는 “주취자는 응급의료체계 내 근무자들에게 상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준다. 또 범법행위의 우려도 적지 않다”며 “응급진료가 반드시 필요한 환자들의 진료에 큰 방해를 입기도 하고, 응급실에서는 주취자에 의한 폭력과 진료행위 방해가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주취자에 의한 폭력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대한응급의학회가 23개 대학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응급실 손상 감시 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약 9%가 주취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구급대원 폭력 실태 및 처리현황’에서는 구급대원 폭력 가해자의 92%가 주취와 관련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주취자의 응급실 폭력은 죄질에 비해 처벌 수준이 미약한 상태다. 형법 10조 2항의 주취감경조항 때문이다. 이에 대해 류 이사는 “응급의료현장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해서는 주취상태라 하더라도 심신장애 판단을 엄격하게 적용하도록 법력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응급의료현장의 주취자관리료 도입도 제안했다. 류 이사는 “실제로 응급의료기관은 주취자를 거절할 수 없도록 명시해놨기 때문에 주취자가 응급실에 많이 온다. 경찰이 주취자에 대한 의료적 판단이 어렵기 때문에 병원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병원이 주취자를 대응하는 데에 대한 비용 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주취 환자에게는 가뜩이나 부족한 응급의료 자원이 두 배 이상 소모된다. 술 취한 분들은 아파도 안 아프다고 하고 안 아파도 아프다고 한다. 일반 환자보다 장시간의 모니터링이 필요하고 소요 인력이 두 배 이상으로 든다”며 “기존 정신과적 응급처치 수가항목을 주취환자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주취자 관리료의 추가 신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의료현장의 폭력문제 해결을 위한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복수의 응급의료전문가들은 주취자에 의한 폭력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홍성엽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주취환자에 대한 진료거부권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홍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경찰이 민간의료기관에 주취자 보호역할을 인계하는데 비해, 미국, 호주, 독일 등 국가에서는 민간의료기관이 아닌 유치장, 공공치료시설, 공인보호시설, 주취해소센터 등에 주취자 보호를 담당하고 있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느슨한 주류판매와 음주관련 규제로 음주 문제가 만연하다. 그런데 경찰은 만취자를 응급의료기관으로 이관한 후에는 더 이상 책임지지 않는다. 때문에 응급의료기관은 주취자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며 “의료기관에만 주취자 보호 기능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은희 병원응급간호사회장은 “전국 대부분의 응급실 간호사들은 주취자의 폭행과 폭언, 성추행, 성희롱, 정신적 폭력으로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간호사들은 환자를 보호하고, 증상을 봐야 하기 때문에 환자 옆에 갈 수밖에 없지만, 주취환자로 인해 눈이나 머리에 상해를 입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호소했다.

정 회장은 “이는 다른 중증응급환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다른환자들의 진료권을 방해하는 처사다. 때문에 심신미약자에 대한 처벌 면제는 응급실에서 만큼은 예외조항으로 두어야 한다”며 “응급실 내 폭력에도 피해 의료인들은 적절한 방어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응급실 내 경찰상주 체계도 적극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더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도 ‘응급실 내 경찰 상주체계’ 도입에 적극 찬성했다. 안 대표는 “현재 400여개인 전국 응급실에 경찰이 상주할 수 있도록 검토해야 한다”며 “의료기관은 주취환자를 막을 수 없지만 경찰은 현장에서 체포하고 수사할 수 있다”며 “적어도 안전문제를 강조하는 대통령이라면 응급실 안전 문제만큼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취폭력 가해자에 대한 사법기관의 온정주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해영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는 “응급실에서는 폭력을 휘두르던 이가 법정에 가면 착한 사람이 돼있다. 법정에 술을 먹고 오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눈물을 보이면서 반성하더라도 법정 밖에 가면 달라지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인술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 내의 폭행은 테러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주취자 폭행 사건이 벌어졌을 때에는 물리력을 사용한 제압이 필요한데 이것을 인권침해로 본다면 경찰이 상주한다고 해도 주취자를 제압하는 것이 아닌 대신 맞아주는 역할 밖에 하지 못 한다”며 “사실상 신고를 받고 경찰이 오면 상황이 끝난 경우가 많다. 경비업법을 개정해 병원 경비원이 현장에서 즉시 제압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는 응급실 이용문화 확산에 방점을 두고 문화 개선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또 소방청은 소방경찰이 협업해 주폭환자를 일반환자와 분리해서 시설에 수용하도록 하는 제도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경찰청은 응급실 폭력 문제에 있어 신속하고 엄정한 대응을 약속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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