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폭력 근절을 위해 환자단체가 나섰다. 병원에 경찰을 배치해달라며 국민청원을 올리는가 하면, 의료계에 의사와 환자 간 불통을 깨기 위한 공동 프로젝트도 제안했다. 의료현장의 갈등은 환자입장에서도 풀어야할 과제라고 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응급실에서의 의료인 폭행 문제는 전에도 꾸준히 있었던 일이에요. 그동안 수없이 많은 논의와 안이 나왔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죠.” 안 대표는 “이제 실효성 있는 방안을 선택할 때”라며 이같이 말했다.
환자단체가 제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응급실 경찰 배치’다. 응급실에 경찰이 상주할 경우 폭력 문제는 물론 병원 내 각종 갈등상황을 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안 대표는 “경찰은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일단 경찰이 있으면 곧바로 상황을 확인해 경찰력을 행사할 수 있고, 전기충격기 등 각종 도구로 제압이 가능하다. 폭력상황이 심각할 경우 조직 내에서 출동을 요청해 더 많은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며 “응급실 의료인 폭행 제압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응급실 경찰 배치가 다른 상황과 비교해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기관이나 공공기관 등에서는 각 사업장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사설경찰(청원경찰)을 둔다. 그런데 응급실에만 국가 경찰을 배치하는 것은 특혜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병원에 사설경찰을 허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안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전국 56개 권역응급의료센터의 하루 유동인구만 각각 만 명 정도다. 유동인구 규모만큼 수없이 많은 사건이 발생한다. 이 정도 규모라면 충분히 경찰 1~2명 정도는 상주해도 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병원 내 사설경찰을 두는 것에도 반대다. 사설경찰에게 허용된 물리력이 환자들에게 공정하지 않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 안 대표는 “사설경찰을 병원소속 직원이다. 병원과 환자, 의사와 환자, 병원 인력과 환자 간의 갈등 상황에서 사설경찰은 병원 편이다. 자칫 병원이나 의료인에 이의를 제기하는 선량한 환자가 억울한 상황에 몰릴 수 있다”며 “환자와 의료인 양쪽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공권력인 경찰을 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환자단체가 응급실 경찰을 환영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병원에서 발생하는 각종 의료사고나 의료분쟁의 해결에 경찰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다.
안 대표는 “많은 의료사고 피해자나 의료분쟁 환자들이 ‘병원에 경찰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실제로 의료사고 발생 시 현장에 경찰이 있다면 진실발굴에 유리하다”며 “여러 의료사고를 접하면서 느낀 것은 아직 우리 경찰이 의료를 잘 모른다는 점이다. 경찰을 병원에 배치하면 자연스럽게 의료전문경찰을 양성하는 효과가 있겠고, 향후 의료전문경찰이 보건의료인과 환자안전을 지키고 분쟁을 해결하는 역할까지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안 대표와 환자단체연합은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국민청원을 올렸다.
더 나아가 환자단체는 의료현장의 폭력과 갈등이 의사와 환자 간 뿌리 깊은 불신과 불통에서 발생한다고 봤다. 폭력의 근본원인인 ‘불통’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의료계에 '의사-환자 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프로젝트'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안 대표는 “의료현장에서 환자와 의사의 소통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 환자에게는 가장 효율적으로 (의사에게) 질문하는 방법을, 또 의사에게는 답변하는 방법을 매뉴얼화하는 작업”이라며 “환자는 경험이 없으니 병원에 가서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의료인도 정서적으로 예민할 수 있는 환자의 입장을 몰라서 실수가 나온다. 그런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은 매뉴얼이 있다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다만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의료현장의 소통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실제 현장에서 녹음, 영상촬영, 현장점검 등이 필요한 데 의료진이나 병원의 협조를 받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그는 의료현장의 폭행 방지를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안 대표는 “응급실이든 진료실이든 의료현장에서 폭행이나 협박이 일어나면 의료인뿐만 아니라 환자도 피해를 입는다. 이는 환자와 의료진이 협력해서 풀어야할 문제”라며 “분명한 범법행위고 처벌이 상식적임에도 왜 응급실에서 폭행‧협박이 일어나는지 살펴야 한다. 원칙적인 형사고소와 엄정한 법적 절차도 필수 사항이다. 이런 노력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만 폭행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