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과로와 격무는 수년째 풀리지 않는 숙제다. 과중한 업무부담과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국내 간호사의 평균 근무연수는 5.4년에 불과하고, 신규간호사 33.9%가 1년 내 이직을 선택한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채용인원의 과반수이상(53.8%)이 병원을 떠나고 있는 실정.
이와 관련 최근 의료계에서는 간호사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간호사의 업무 부담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을지 주목된다.
◇간호사 돕는 자동화 시스템 등장...‘불필요한 과정 없애자’ 간소화 방안도 모색
특히 혈압·맥박·체온 등 바이탈, 배출량(I/O‧input/output) 측정 등 기본적이지만,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가 간소화 대상으로 떠오른다.
의료기기업체 엠티비(mTV)는 최근 '간호캡25'를 출시했다. 환자의 바이탈 사인을 자동으로 기록하고 투약·채혈·수혈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해주는 간호보조 로봇이다. 환자 손목 팔찌에 있는 바코드를 스캔하면 바이탈이 체크되고, 블루투스로 연동돼 병원 내 전자의무기록(EMR)에 자동 기록된다. 엠티비 관계자는 “간호사들이 직접 바이탈을 측정하고 수기로 기록해야 했던 업무를 자동화했다. 간호사의 일손을 덜어주고, 투약 오류 등 실수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환자들에 바이탈이나 배출량(I/O) 측정을 아예 하지 않는 것도 검토된다.
가톨릭 혈액병원은 지난 3월부터 전체 입원환자 50%를 대상으로 바이탈, 배출량 측정을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제외하고 있다. 중환자 또는 수술 전후에 있는 환자의 경우 상태 파악을 위해 생체징후 정보가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환자들의 정보는 활용도가 매우 낮다는 이유에서다.
김동욱 가톨릭 혈액병원장은 “간호사들의 업무량이 무척 많다. 불필요한 업무에 빼앗기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시험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례로 배출량을 체크할 때 간호사는 환자에게 먹은 음식을 물어봐서 대략적인 양을 기록한다. 애초에 정확하지 않은 정보고, 어떤 환자들은 진료 시 활용도도 낮다. 그러나 측정‧기록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며 “버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환자군을 나눠 일부 환자에게는 리퀴드(음용량/소변량)만 측정하고, 또 건강상태가 좋은 일부 환자에게는 바이탈과 I/O 모두 측정하지 않는다. 추후 활용도나 효과 등을 비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병원에서는 의료진마다 제각각인 처방 스타일이나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습관적으로 내는 지시를 표준화‧간소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발족한 ‘의사처방 슬림화‧표준화위원회’를 중심으로 매달 간호팀, 보험팀, 약제팀, 교수진 등 35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각 분야별 진료프로세스의 개선 방안을 모색한다.
김 원장은 “의사들마다 처방하는 스타일이 모두 다르다. 또 습관적으로 내는 불필요한 지시도 있다. 이 때문에 간호사들이 소모되는 시간이 적지 않다”며 “가능한 한 통일할 수 있는 것들은 통일하고, 없앨 수 있는 것은 없애서 진료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고자한다”고 말했다.
◇간호사들 "본질은 ‘인력’...간호사 존중하는 문화도"
자동화, 표준화 등 의료계의 노력이 실제 간호사의 업무 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간호계에서는 우려와 기대가 함께 나온다.
행동하는간호사회 소속 최원영 간호사는 “간호사 업무 중에서 자동화‧기계화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진료 표준화작업도 간호업무 경감의 정답은 아니다”라며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기준이라는 가이드라인이 이미 있지만, 환자마다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의료 현장에서는 적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의견을 냈다.
간호사연대 임주현 회장은 “간호보조기기 등 자동화가 이뤄지면 간호사 업무경감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보였다. 그는 “그동안 환자상태를 측정하고 기록하는데 업무 로딩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만약 이 과정이 자동화된다면 현재 업무에서 30%는 덜 수 있을 것 같다”며 “다만 대형병원의 경우 자동화에 대한 관심이 많고 적극적이지만 일반 중소병원은 그렇지 않다. 지역별 격차가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들 간호사들은 한 목소리로 ‘간호인력 확충’을 간호사 업무 경감의 가장 확실한 해결책으로 꼽았다.
최 간호사는 “결국 간호 인력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배고픈 사람이 100명 있다면 밥을 100인분 준비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 외의 방법은 밥을 50인분만 준비해놓고 포만감을 잘 느끼는 조명을 켠다든지, 음악을 트는 정도에 그친다”고 말했다.
임 회장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인력이다. 간호사 1인당 맡는 환자수를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몇 배씩 차이가 난다. 적절한 인력 충원과 근로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 간호사 1명당 담당하는 환자는 19.5명이다. 이는 미국 5.4명, 일본 7명에 비하면 3~5배 많은 수치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