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부터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이 예정된 가운데 대한의사협회가 돌연 어깃장을 놨다.
의료계 입장에서는 약 800억 가량의 정부 재정이 일차의료에 들어가는 수익사업인데 의사단체가 나서서 반대한 속내가 주목된다.
지난 13일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통해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추진단 구성과 시범사업 모형 마련에 있어 의료계의 의견 수렴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며 “현 추진단을 해체할 것”을 요구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26일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추진단’을 출범시킨 바 있다.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사업은 동네의원 등 일차의료기관에서 고혈압·당뇨 환자에 대한 진료에 생활습관 교정·상담을 더해 포괄적으로 만성질환을 관리하고자 추진됐다. 참여하는 동네의원에 상담인력인 케어코디네이터(간호사 또는 영양사)를 고용하도록 하고, 그에 대한 수가를 추가로 적용한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날 성명에서 의협은 “만성질환 관리에 있어 일차의료 현장전문가의 참여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총 20여 명의 위원 중 일차의료를 대변할 수 있는 위원으로는 대한의사협회 및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추천 위원 2명 정도일 뿐”이라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또한 이들은 “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를 추진위원회에서 제외할 것”도 요구했다.
이 같은 의사협회의 행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용 면에서는 의료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추진위원회에 일차의료를 대변할 수 있는 위원이 2명뿐이라는 의사협회의 주장과 달리 실제 22명의 추진위원 중 의사출신만 12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추진위 출범 이후 지난 3일 진행된 첫 회의에서는 각 전문가 단체가 참여했고 의사협회도 함께했다”며 “회의에서는 조직 구성과 사업 방향 등에 대해 별다른 이견은 없었는데 당황스럽다”고 전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 대표도 “사실상 의료계에 주는 수가를 많이 담은 사업이고, 환자단체도 초기에는 반대했지만 일차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나름의 공감대에서 동참했는데 도리어 의사협회가 판을 깬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이번 추진단이 깨진다면 환자단체는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의사협회로부터 추진위 제외 대상으로 지목된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고병수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장은 “의사들 독단으로 일차의료 만성질환 사업을 하겠다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다”며 “무엇보다도 설명이나 세세한 관리가 중요한데 의사 단독개원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의사 혼자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냐”며 반문했다.
이어 그는 “일차의료 사업을 위해서는 지역의 많은 보건의료 인력들이 함께 해야 하며, 의사뿐 아니라 치과의사, 간호사 등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이미 지역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한의사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다”며 “본 학회를 추진위원회에서 배제하라는 발언은 학회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추진위원회는 의사협회에 만남을 제안한 상태다.
박형근 추진단장(제주대 공공의료사업단)은 “지난 회의에서 의사협회은 추진위 내 의료계 정원 확대를 요청해왔고, 현재 협회에 만남을 제안한 상황”이라며 “기본적으로 이번 사업은 고혈압·당뇨를 진료하는 동네의원을 대상으로 의사와 환자의 관계 바꾸기를 시도하는 일이다. 때문에 의사협회의 협조 없이는 어렵고, 풀어갈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