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명의 시민들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사법부, 언론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기폭제가 된 건 안 전 지사의 무죄 판결.
18일 오후 5시 서울역사박물관 앞 도로는 “법원이 미투 운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이번 판결에 분노한 시민들의 분노로 들끓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회 참석인원은 늘어 6시부터 진행된 도심 행진에는 2만여 명에 동참했다.
행진에 참석하지 않은 시민들도 행진 대열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는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외국 관광객들은 우리나라의 미투운동 열기에 놀라움을 표하며 행진 대열을 촬영했다.
이날 김지은씨는 현장에 모습을 보이진 않았지만 편지를 통해 심경을 전했다. 김씨는 “기댈 곳이 없다”며 “진실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피해는 일반 시민들이 직장과 가정에서 폭력과 다르지 않다며 진실 규명에 힘을 보태달라고 전했다.
행진 대열은 청와대가 보이는 광화문 사거리에 멈춰서 “사법부가 이따위면 누가 법을 존중하는가. 무늬만 성적자기결정권이지 내용은 정조 운운한 사법부가 문제다. 죄지은 사람이 벌 받아야 사법정의가 실현된다”고 외쳤다.
집회에 참석한 대다수 인원은 여성이었지만, 남성 참가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유명수군(가명·18)은 “(이번 판결에 대해) 학교에서 많은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만, 관심이 있는 친구들은 법원의 결정이 잘못됐다는 공감대가 있다”며 “법원 판결대로라면 성적자기결정권을 다른 사람이 침해해도 된다는 것 아니냐”고 목소릴 높였다.
송명철씨(가명·25)는 우연히 집회에 동참한 경우다. 그는 “다른 일로 근처에 왔다 집회가 열리는 것을 보고 참석하게 됐다”면서 “안 전 지사는 지금도 김지은씨에게 여전히 미안한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집회를 준비한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이하 미투시민행동)은 350여개의 여성·노동·시민사회단체가 동참하고 있어 사실상 여성계를 대변한다. 김영순 집행위원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시각을 여실히 드러낸 결과”라며 “20~30대를 중심으로 상당수의 여성들이 이번 판결에 좌절과 분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 문제는 진보와 보수, 정치를 떠나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라고 본다. 법원이 피해자의 정조를 운운하며 피해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해자의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본 것에 매우 깊이 유감이다”고 밝혔다.
한편, 비판의 대상에 언론도 오르내렸다. 집회 참가자들은 일부 언론이 안희정을 비호하고 있다며 작심 비판했다. 특히 모 종편방송사 소속 기자와 카메라맨을 향해 주최 측은 취재 거부 의사를 밝히고 촬영 및 취재 중단을 수차례 요구하기도 했다.
일부 불쾌감을 표하는 기자들을 향해 주최 측 관계자는 단상에서 “황당하다는 표정 짓지 말라. 가해자 측 입장을 받아쓰고 피해자를 2차가해한 것은 잊었느냐”고 지적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