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정부가 모든 임신중절수술을 금지시킨 겁니다.”
정부가 임신중절수술(낙태)을 합법 여부와 상관없이 전면 금지시킨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7일 낙태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고, 수술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시행한 것에 대한 해석이다.
28일 이충훈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의사를 처벌하겠다는 것은 결국 국가가 임신중절을 금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대책도 없이 무작정 금지시키면 어떡하나. 10대 임신이나 미혼모, 가난해서 아이 키울 수 없는 산모를 해결할 대책부터 마련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냐”며 정부에 일갈했다.
이날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불법 임신중절수술을 전면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기자회견에서 직선제 의사회는 임신중절수술을 하는 의사를 자체적으로 감시하고, 낙태약 미프진의 불법 유통을 고발해 암암리에 시행되는 임신중절을 모두 막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현재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직선제와 이 회장이 있는 간선제(가칭) 두 파로 나뉘어 있다.
이 회장은 직선제 의사회의 ‘임신중절수술 거부 선언’ 등에도 쓴 소리 했다. 그는 “이미 금지된 임신중절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무슨 힘이 있느냐”며 “회원들의 동의를 받았다고 하지만 2016년의 일이고, 일선 임산부나 환자들의 정서는 생각해봤는지 의문이다. 또 낙태 처분 조항은 유예가 아니라 아예 철폐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낙태죄 폐지에 암묵적으로 찬성한다. 다만 의사로서 임신 12주까지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에 따르고, 그 후에는 태아의 생명권과 사회경제적 사유를 따져봐야 한다고 본다”며 “기본적으로 임신중절은 비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의료행위”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낙태 규제를 강화함에 따라 성폭행 피해자 등 합법적인 임신중절이 필요한 여성조차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아름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는 “성폭력 피해자가 임신중절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전혀 소용이 없다. 근본 해결책은 낙태죄 자체를 없애는 것”이라며 “지금도 많은 병원이 처벌의 우려 때문에, 종교적 사유 때문에 임신중절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부가 임신중절을 비도덕적인 행위로 낙인을 찍는다면 앞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은 더 불법적이고 위험한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영규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수석부회장도 “애초에 여성이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증거를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경찰에 신고해도 경찰은 증거를 가져와야 도움을 준다. 피해자가 증거를 채취해서 국과수에 보내서 결과를 얻는 과정 자체도 너무 복잡하다”며 “그 과정이 어려우니 합법적인 임신중절을 못하는 것인데 정부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며 의견을 더했다.
실제로 일부 가톨릭 계열 의료기관의 경우 ‘종교적 사유’로 성폭력 피해자의 사후(응급)피임약 처방, 인공임신중절수술 등 산부인과 진료를 조직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접수단계에서부터 해당 환자를 받지 않는 방식이다.
이는 현행 의료법 제15조제1항을 위반한 ‘진료거부’로 불법에 해당된다. 복지부는 최근 유권해석을 통해 ‘종교적 신념’은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진료거부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의료기관이 이 같은 진료거부 방침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더라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은 없으며, 의료인의 호의나 재량에 따른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제도적 틀 안에서 임신중절수술을 받을 권리는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다.
박아름 활동가는 “애초에 합법적인 임신중절도 ‘봐 준다’는 입장이지 적극적으로 도와주거나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려는 정부의 노력은 전혀 없다. 피해자는 수술해주는 의료기관을 알아서 잘 찾아야 하고, 스스로 피해를 증명하거나, 비싼 돈을 주고 불법적인 시술을 받는 식으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있다”며 “여기에 대해서 정부는 아무런 방침도 내놓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