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이십대 청년층을 두고 ‘N포세대’란 말이 심심찮게 오갔습니다. 저성장의 늪과 높은 실업률은 청년들이 학업·취업·결혼·주택 등을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이 포기하는 것이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신용’이 그것입니다. ‘좋은’ 신용등급 자체를 만들 기회조차 얻지 못한 청년들. 여기 신용 7등급의 한 이십대 청년이 있습니다. 낮은 신용등급으로 번번이 은행 문턱에서 대출을 거절당했던 최미경씨(가명·24)의 이야기입니다.
◇ 열심히 살아왔지만 ‘신용 7등급’
최미경씨는 헤어디자이너다. 진로를 헤어 디자이너로 결정한 이유는 미용에 대한 관심보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이었다. 최씨의 아버지는 퇴직 후 별다른 소득 없이 지냈다. 생계는 식당 주방에서 일을 하던 어머니가 도맡았다.
비싼 대학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집에 부담을 줄 수 없어 최씨는 대학 진학 대신 헤어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조금이라도 일찍 독립해 집에 도움을 주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최씨는 미용 특화 고등학교에 진학해 3년 동안 헤어 미용 관련 자격증을 따는 등 꿈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한 최씨는 한 헤어샬롱에 보조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다. 전문 헤어 디자이너의 세계는 만만치 않았다.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공부와 실습을 거쳤다해도, 손님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야 하는 ‘실전’은 매일이 살얼음판이었다. 어떤 손님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평을 하기도 했고, 개중에는 무례한 손님도 있어 이제 막 사회생활을 하던 최씨는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
경제적으로도 쪼들렸다. 매달 부모님께 용돈을 보내주고, 공과금, 휴대전화 요금 등을 내고, 저축을 하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고작 몇 푼. 돈이 없어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하기가 일쑤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맞닥뜨린 험난한 사회생활. 끼니를 잇기조차 힘든 상황 속에서도 최씨는 자신의 숍을 열겠다는 꿈 하나로 버텼다.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은 최씨를 주변에서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실력도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단골손님도 늘어났다.
3년 후. 최씨는 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홍익대학교 인근에 작은 미용실을 차렸다. 꿈에 그리던 그만의 숍이었다. 인근의 화려한 다른 헤어숍과 비교하면 소규모의 인테리어도 보잘 것 없는 곳이었지만, 이를 악물었다. 실력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가격도 주변의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저렴하지만 실력 있는 헤어숍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2년. 돈을 아끼기 위해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악착같이 일했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임대료와 재료비 등 운영비를 마련하는 것도 항상 빠듯했다. 설상가상 건물주인은 보증금을 1000만원 올리라고 통보하기까지 했다.
자영업자 대출을 위해 은행을 찾아갔지만, 은행은 난색을 표했다. 최씨의 신용등급은 ‘7등급’.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였다. 신용 7등급의 최씨가 받을 수 있는 낮은 금리의 대출 상품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곳이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였다. 최씨는 이곳에서 2000만 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그 돈으로 최씨는 보증금을 내고 인테리어도 일부 깔끔한 것으로 바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대출 상담사는 최씨와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상황의지와 열정이 남달랐어요. 이십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도 고난을 돌파하려는 의지가 뜨거웠죠. 생활비가 없어 밥은 굶어도 연체는 하지 않을 정도로 ‘똑순이’라 믿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최씨의 경우에도 대출은 여러 정량적 평가도 함께 종합적으로 이뤄져 진행됐다. 다만, 상담사는 최씨의 ‘정성적 요소’가 대출 심사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음을 강조한 것이다.
◇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신용 7등급. 은행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해야 했던 최씨의 사례는 사실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청년들은 돈이 없고, 신용등급이 낮아 도전 자체를 포기해야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각종 지표도 청년들의 상황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보여줍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이십대 채무조정 신청자는 1만1102명에 달했습니다. 같은 해 대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이십대는 4927명에 육박했죠.
청년들이 이 지경까지 온 이유는 대동소이합니다. 학자금과 생활비, 임대보증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지만, 졸업 후에도 취업을 하지 못했거나, 취업을 해도 저임금의 열악한 처우에 있어서 채무불이행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최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닙니다. 서민금융 분야에서는 대학생과 청년층을 대상으로 저금리 생계자금과 채무조정 등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생·청년 햇살론을 비롯한 학자금대출 채무조정, 대학생·미취업 청년을 위한 채무조정지원제도 등이 대표적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청년층들에게 이런 서비스는 ‘단비’일 수 있습니다. 물론, 최씨처럼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열정이 있다면 말이죠.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