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인 2011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동네병원에서 찍은 X-ray에서 좌측 유방에 좁쌀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목욕을 하던 중 몽우리가 커져 있어 바로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최종 진단을 받았다. 바로 수술하지 않고 약물치료를 통해 종양 크기를 줄이려고 했다. 항암 주사를 5번 맞고도 크기가 줄지 않아 그해 8월 수술을 받았다. 그 후 6주 동안 방사선치료를 했는데 뼈로 전이가 됐더라. 그래서 방사선치료를 10번 했다. 그러다 3년 뒤 9월 흉추에서, 또 3년 뒤인 작년 11월 간에서 암세포가 발견됐다. 그래도 지금은 호르몬치료를 받아 일상생활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전에 항암치료 받았을 때는 어지러웠다. 어지러워서 목욕탕에 가면 주저앉거나 쓰러지곤 했다. 지금은 목욕탕도 갈 수 있다. 걱정이 되는 건 비용이다. 내가 지금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연금 받아서 살고 있는데, 연금으로는 치료비 충당이 어렵다. 가지고 있던 돈을 긁어모아서 치료받고 있는데 오랫동안 이렇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지 걱정된다”
A씨(69·여)는 유방암 4기라고 불리는 전이성 유방암 환자다. 국내 유방암 환자 중 처음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받는 환자의 비율은 5% 미만이지만, 암이 재발해 전이성 유방암 환자가 되는 경우는 약 40% 정도에 달한다.
전이성 유방암은 호르몬수용체(HR), HER2 유전자의 과발현 여부 등에 따라 치료요법을 결정하고 있는데, 다른 암에 비해 비교적 항암요법에 반응이 좋고 중앙 생존 기간도 약 2~3년으로 길지만 완치는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암의 진행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치료를 통해 환자의 생존 기간을 연장하고, 암으로 인한 증상을 감소시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치료 목적으로 한다.
두 차례 전이 후 간에도 암이 발견되자 A씨는 박경화 고대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이 환자의 경우 뼈에만 전이가 있을 때는 외과에서 진료를 보았다. 그러다 간으로 전이가 됐기 때문에 전신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종양내과에서 진료를 보기 시작했다”며 “환자분 연세가 있으시고, 투병 기간도 길어서 환자와 보호자를 만났을 때 일반적인 항암치료와 호르몬치료에 대해 설명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두 분 다 호르몬치료를 원하셔서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호르몬치료는 항암제와 달리 독성이 약해서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으실 것이다. 다행히 치료 효과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 국내 유방암 환자 연령 비교적 젊어 치료 시 ‘삶의 질’ 측면 중요
박 교수에 따르면 호르몬수용체 양성인 전이성 유방암 환자는 음성에 비해 치료 예후가 좋고 치료에 잘 반응한다. 이들 환자에서 호르몬요법은 독성이 강한 항암화학요법과 달리 부작용이 비교적 적게 발생하는 편이다. 이 때문에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유럽종양학회(ESMO) 등 항암 주요 학계에서는 호르몬요법을 우선적으로 권고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A씨보다 더 젊은 연령층에서 유방암 발병률이 높아 치료에 있어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2014년 통계청 조사에서 국내 여성 유방암 환자 연령을 보면 진단 시 중앙 나이는 50세였고, 유방암이 가장 많이 발생한 연령군은 40대였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봐도 국내 여성의 폐경 전 유방암 환자 비율은 서구에 비해 월등히 높다. 박 교수는 “젊은 유방암 환자가 늘어날수록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50세 전후면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이다. 어머니 역할도 해야 하고 직업 활동도 해야 한다”며 “그런데 항암화학요법은 독성이 강해 탈모도 생기고, 주기적으로 내원해 주사를 맞아야 한다. 또 다른 부작용들 때문에 체력적인 소모가 많다”고 말했다.
◇ 긴 치료 기간, 치료제 내성 문제 해결 위해 새로운 치료 옵션 필요
박 교수는 ‘치료 효과’ 측면에서도 기존 항암치료 외 새로운 치료 옵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이성 유방암은 치료 기간이 길고, 전이가 지속될수록 이전 치료제에 대한 반응이 떨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치료제에 대한 옵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호르몬수용체 양성 환자들은 항암치료 이전에 호르몬치료제를 최대 세 번까지 쓸 수 있는데, 세 번째 호르몬치료제를 사용해야 하는 시점에 다다르면 보험이 되지 않는 치료제가 존재한다. 내성 등의 이유로 환자에서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환자들은 비보험 약제를 선택하거나 항암화학요법으로 치료를 바꿔야 한다. 게다가 젊은 환자일수록 치료 기간이 더 길어지고, 내성 위험도 커지는데 급여권 내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유방암 치료제가 많이 나왔다. 그런데 과거 출시된 치료제 대비 좋은 임상 효과를 보이고 있는 약제들 중에서 급여권에 다다르지 못한 경우가 있다”며 “병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세 번째 호르몬치료법 선택 시기가 오면 대략 95%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고 항암화학요법을 선택한다. 급여권의 치료제가 많지만 환자 입장에서 효과를 보이는 새로운 치료 옵션에 대한 접근성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희망했다.
이와 함께 박 교수는 암 치료 효과를 높이는 방안으로 ‘환자와 의사 간 신뢰 구축’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일반적으로 암이 한번 재발하면 의료진에 대한 환자의 신뢰가 쉽게 무너진다. 그리고 환자들이 다른 병원을 돌며 치료한다”며 “그러나 A씨는 의료진이 가이드하는 대로 충실하게 따라오는 환자다. 보호자도 본인의 역할을 매우 잘 해주고 계신다”고 말했다.
이어 “암 치료에 있어서 의사와 환자 간 신뢰 관계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사실 암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세 축은 환자와 보호자, 의사이다. 세 축이 단단하고 균형 잡혀 있는 경우 환자의 치료 효과와 경과가 다른 환자 대비 매우 좋다. 반면 세 축 중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오래가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