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펑크(Homo Punk). 뮤지컬 ‘헤드윅’의 주인공 헤드윅에게 인류를 정의해보라고 묻는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호모 펑크, 저항하는 사람들. 헤드윅과 헤드윅을 만든 존 카메론 미첼처럼.
지난 5~7일 서울 세종로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존 카메론 미첼의 단독 콘서트 ‘엘로퀀스 – 디 오리진 오브 러브’(Eloquence - The Origin of Love)가 열렸다. 미첼이 한국에서 공연하는 건 10년 만으로, 자신이 만든 ‘헤드윅’에 관한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로 진행됐다.
첫날 공연은 흥분과 기대로 넘실댔다.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이날 종일 비가 내렸지만 공연장은 이른 시간부터 관객들로 북적였다. 기념품을 판매하는 부스 앞엔 공연 직전까지 긴 줄이 이어졌다. 헤드윅의 노란 가발을 쓰고 나타난 헤드 헤즈(헤드윅의 열성 팬들을 아우르는 말)도 있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당신들이 좋아하든 말든, 소개합니다. 존 카메론 미첼!” 서브 보컬인 엠버 마틴은 ‘헤드윅’ 속 이츠학의 멘트를 고스란히 따와 미첼의 등장을 알렸다. 미첼은 밴드의 애국가 연주 아래서 나타났다. 밴드 마스터이자 국내판 ‘헤드윅’의 음악 감독으로 오래 일한 기타리스트 이준의 솜씨임이 분명했다.
공연 대부분이 ‘헤드윅’의 넘버로 채워졌다. ‘디 오리진 오브 러브’로 막을 연 미첼은 ‘위키드 리틀 타운’(Wicked Little Town), ‘슈가 대디’(Sugar Daddy), ‘위그 인 어 박스’(Wig in a Box), ‘미드나잇 라디오’(Midnight Radio), ‘앵그리 인치’(Angry Inch), ‘더 롱 그리프트’(The Long Grift) 등을 들려줬다. ‘헤드윅’ 미수록곡 ‘밀퍼드 레이크’(Milford Lake), 차기작인 팟캐스트 뮤지컬 ‘앤썸’(Anthem)에 실릴 예정인 ‘엔드 오브 러브’(End of Love)와 자신이 감독한 영화 ‘하우 투 토크 투 걸스 앳 파티스’(How to Talk to Girls at Parties)에 수록된 ‘버뮤다’(Bermuda)도 선곡했다.
‘헤드윅’은 동독 출신 트랜스젠더 헤드윅이 자신의 반쪽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성전환수술이 실패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어정쩡한 몸으로 살던 그는 자유의 땅 미국에서 토미 노시스라는 소년과 사랑에 빠진다. 헤드윅은 토미가 자신이 찾던 반쪽이라고 확신하지만 토미는 헤드윅에게서 남은 남성의 흔적을 발견하고 달아난다. 급기야 헤드윅이 쓴 노래를 훔쳐 록스타가 된다.
미첼은 헤드윅에게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을 투영했다. ‘헤드윅’의 원래 주인공은 록스타를 꿈꾸던 군인의 아들 토미였는데, 베를린 주둔 미군 사령관인 아버지 아래에서 록에 빠져들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반영된 캐릭터다. 헤드윅의 모습은 자신의 동생을 돌봐오던 보모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헤드윅의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그것의 극복 서사는 미첼 자신의 이야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미첼은 음악가이자 철학가였고 동시에 익살꾼이었다. 격렬하게 무대를 오가더니 거친 숨을 내쉬며 “난 너무 늙었어. 씨X 너무 늙었다고!”라고 한탄해 관객들을 웃겼다. 어감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가리봉동”을 외치기도 했고, 조명이 꺼졌을 땐 무대 앞에 있는 프롬프터 모니터를 훔쳐가려고 시늉하기도 했다. 덕분에 적지 않은 관객들이 눈에 눈물을 달아놓은 채로 웃음을 터뜨렸다.
미첼의 이야기엔 잭이라는 남자가 나온다. ‘헤드윅’의 작곡가 스티븐 트래크스가 꾸린 밴드의 베이시스트이자 미첼의 남자친구였다. 소수자들과 패배자들의 친구였지만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했다가 2004년 세상을 떴다. 미첼은 ‘헤드윅’의 마지막 노래인 ‘미드나잇 라디오’를 부르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기억하세요. 잭처럼 모두들 거대한 장벽에 맞서 싸우고 있어요. 그러니 잭처럼, 포용하세요.” 뮤지컬과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가 관객들을 덮쳤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