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조선시대다. 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이 보여준 한국형 좀비물의 가능성을 영화 ‘창궐’(감독 김성훈)이 조선판 좀비물로 이어받았다. 하지만 신선한 소재만으로 부족한 완성도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창궐’은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을 배경으로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야귀’(夜鬼)가 창궐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청나라에서 자란 왕자 이청(현빈)은 역모를 꾸민 것으로 몰린 형이 죽기 전 쓴 편지를 들고 귀국한다. 조선의 왕이 될 생각이 없었던 이청은 밤마다 출몰하는 야귀 떼에 희생당하는 백성들과 병조판서 김자준(장동건)의 음모를 알게 되며 진정한 임금으로 거듭난다.
‘창궐’의 과감한 시도는 일부분 성공했다. ‘창궐’에는 분명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한 장면들이 가득하다. 궁중 한복을 입고 궁궐을 뒤덮는 야귀 떼의 위압감은 ‘부산행’에서 본 것 이상이다. 좀비 특유의 기괴한 움직임과 한국 좀비 특유의 스피드, 점프력, 잔혹함 등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야귀가 조선으로 유입된 과정을 짐작케하는 첫 장면을 시작으로 감염되는 과정, 햇빛에 약하다는 설정들을 꼼꼼하게 전달하는 점도 눈에 띈다. 동공이 하얗게 되고 얼굴에 검은 기운이 감도는 등 야귀가 되어가는 과정도 이해하기 쉽게 그려 몰입을 더했다.
액션과 미술에 공들인 것에 비해 내용의 완성도는 아쉽다. ‘창궐’의 전체 스토리는 김자준의 정치 스릴러와 이청의 성장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는 중반 이후 등장하는 야귀 떼와 얽히며 방향성을 잃고 제멋대로 흘러간다.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의 희생에 눈물 짓는 감동 스토리가 되고, 진정한 임금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다가 두 명의 주인공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를 맞대결을 펼치는 식이다. 애써 설명했던 야귀 관련 설정을 무시하는 전개나 주인공들이 펼치는 허술한 작전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다. 긴시간 이어지는 공들인 액션과 좀비 연기자들의 노고가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다.
여러모로 앞으로 한국에서 좀비물을 만들 창작자들이 참고할 만한 작품인 건 분명하다. 장동건의 익숙한 악역 연기와 현빈의 물오른 검술 액션도 눈에 띄지만, 매 작품 살아 움직이는 조우진의 연기력이 유독 빛난다. 오는 25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