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화학 업계가 에틸렌(ethylene) 설비 신·증설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에틸렌은 자동차·가전·의료·의류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는 산화프로필렌(PO)·폴리프로필렌(PP)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기초 원료다.
이러한 정유화학업계의 행보는 세계적인 ‘탈 화석에너지’ 추세에 발맞추기 위함이다. 탈 화석에너지 정책은 유럽과 중국, 인도 등에서 내연기관(가솔린 및 디젤엔진) 차량의 단계적 퇴출 방침과 함께 화석에너지 사용 중단 계획 등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올해 ‘신재생에너지 3020’ 계획을 통해 친환경 에너지 사용 확대 정책을 불을 당겼다.
세계적인 친환경 에너지 비중 확대는 정유 제품 판매량 감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전 세계적인 정유제품 수요 감소가 가시화된 이상 이를 대비한 미래 먹거리가 에틸렌이라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이에 따라 본래 화학기업의 영역이었던 에틸렌 생산에 정유사들도 뛰어들고 있다. 올 2월 GS칼텍스가 에틸렌 70만톤을 생산할 수 있는 올레핀 생산시설(MFC) 구축에 나선 후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도 잇따라 석유화학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정유 3사의 투자금액 합계는 10조원에 달한다.
GS칼텍스는 올해 2월 약 2조6000억원을 투자해 에틸렌, PE(폴리에틸렌) 등을 생산할 수 있는 올레핀 사업 추진에 나섰다. 에쓰오일도 울산 부지에 연간 150만톤 규모의 PO, PP 등의 제품 생산이 가능한 NCC(나프타 분해시설) 건설을 검토 중이다. 총 5조원이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는 국내 정유사 단일 프로젝트로는 최대 규모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5월 롯데케미칼과 합작사인 현대케미칼을 통해 2021년까지 연간 75만톤의 에틸렌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체제를 갖춘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내 대표 화학기업인 LG화학과 롯데케미칼도 에틸렌 증산을 위한 투자에 나섰다. LG화학은 지난 7월 여수공장과 대산공장에서 각각 80만, 30만톤의 에틸렌 생산설비 증설 계획을 알렸다. LG화학은 이번 투자로 2021년까지 총 110만톤의 생산 능력이 확충될 전망이다.
롯데케미칼은 여수NCC 20만톤 증설과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신규 에탄분해시설(ECC)을 건설하고 있다. 미국 ECC 생산설비가 상업 생산에 돌입하면 롯데케미칼의 에틸렌 생산량은 연간 450만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천NCC도 최근 제2 NCC 증설과 신규 부타디엔(BD) 공장 건설에 약 74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에틸렌 생산능력을 195만톤에서 228만5000톤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정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최근 에틸렌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유망한 수익원이다. 업계가 증산에 나서는 이유다. 또 정유사 입장에서 설비만 갖추면 원유 정제 후 남는 잔사유를 에틸렌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