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를 국민에게 알려야 할까.‘
사법농단 수사에 대한 법원의 ‘무더기 영장 기각’은 꾸준히 논란이 돼왔다.
지난 8월20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5명의 전·현직 판사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중 법원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자택 사무실 압수수색 영장만을 발부했다. 나머지 4명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면서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이언학 부장판사는 “주거의 안정과 평안을 해쳐야 할 정도로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최근 10년간 압수수색 영장 발부 비율은 평균 93%다. 이에 비해 사법농단 사건 관련 압수수색 영장 비율은 11.1%에 불과하다. 시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대학생 우모씨(29)는 “대법원 기밀자료를 무단 반출한 혐의를 받는 전직 대법원 관계자가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틈을 타 관련 자료를 파쇄했다는 뉴스를 봤다”며 “국민을 기만하는 것처럼 보였다. 영장 발부 기각 사유는 반드시 국민이 알아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김지윤(31)씨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이 KTX 승무원 복직소송까지 개입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적폐청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법원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영장을 제대로 발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길중(79)씨는 “사법농단 수사에 법원이 협조하지 않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법원의 입장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혀 국민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했다.
유근영(40) 마트산업노동조합 조직국장은 “사법부의 고위급 관리라면 더 엄격히 수사해야 맞는 게 아닌가”라며 “영장 기각률이 90%라는 말은 결국 수사에 협조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영장 기각 사유로 법원이 주거 평안을 든 것도 어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노모(68)씨는 “사람들이 왜 자꾸 의심만 많아지는지 모르겠다”며 “법원이 영장 발부를 기각했다면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법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봤다.
홍모(62·여)씨는 “이미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모두 구속된 상태”라며 “적폐청산 논란거리를 왜 자꾸 만드는지 모르겠다. 영장 기각은 법원의 결정이다. 사법부를 거스르겠다는 것인지 참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전날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사법농단 수사 진척이 더딘 것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영장 기각 사유 공개에 대한 자신의 의견도 밝혔다. 윤 지검장은 “진상규명이 안 되는 이유를 국민에게 알리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수사가 신속하게 진상 규명이 안 되는 문제에 대해 국민께 알리는 차원”이라며 “사법부나 법관들에게 모욕감 드리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은 지난 18일 검찰의 법원 영장 기각 사유 공개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체적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부분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사실관계를 과장하거나 추측성 비판을 하는 것은 재판권 침해로 여길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이하 시국회의)는 20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사법적폐 청산 3차 국민대회’를 열었다. 시국회의 참석자들은 이날 오후 4시30분 탑골공원에서 행진을 시작했다. 시국회의는 105개 단체가 참여, 지난달 1일 ‘사법적폐 청산 1차 문화제’를 시작으로 사법농단 수사 및 책임자 처벌 요구를 해왔다.
정진용, 신민경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