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들이 의료분쟁 조정신청에 대해 ‘거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 대리수술로 인한 뇌사사건이나 인천 마늘주사 패혈증 쇼크사건 등 의료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분쟁조정 역할도 더 중요해지고 있지만,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발목을 잡는 건 법이다.
현행법 상 의료분쟁의 피해자가 조정신청을 해도 상대 의료기관이 조정·중재를 거부하면 조정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피해자들은 민사 소송을 선택하거나 경찰 및 검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에 따르면, 2016~2018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접수된 조정·중재 신청건수는 총 5768건이었다. 이 중 2560건(44%)은 의료기관이 조정·중재 자체를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1755건(69%)은 의료기관들이 특별한 사유 없이 참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재원은 이렇게 의료기관이 조정을 거부할 경우, 피해자에게 ‘각하 통지서’를 발송하게 된다. 각하 사유란에 ‘피신청인의 조정 불응의사 확인’ 단 한 줄이 전부다. 김상희 의원은 “중재원이 지금까지 의료사고로 피해를 입고 고통 받은 피해자에게 이런 한 줄짜리 무성의한 각하통지서를 보내왔다”며 비판했다.
이러한 조치를 반영하듯 중재원의 고객만족도 조사결과를 보면, ‘환자 만족도’는 지난 2015년 68점에서 2017년 50점으로 대폭 하락했다.
김상희 의원은 “지금까지 보건복지부와 중재원은 의료사고에 대해 너무나 소극적이고 안일한 자세로 대처해 왔다”며 “중재원을 통해 피해자와 의료기관의 의견을 문서상으로 명확하게 정리한다면 불필요한 싸움과 소송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사고로 가뜩이나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이런 무성의한 각하통지서를 보내는 것은 상처받은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이라며 “향후 조정을 거부하는 의료기관이 명확한 사유를 밝혀 의료인과 환자 사이의 정보비대칭을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 의원은 지난 8월 6일 무의미한 답변을 방지하고 신청인이 의료사고 유무 여부를 예측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에게 ‘객관적인 거부 사유가 포함된 답변서’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거부할 경우 조정절차가 자동으로 개시되도록 하기 위해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대한의사협회는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