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 범죄자 신상 공개 기준의 객관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강서경찰서는 1일 등촌동 소재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피의자 김모(49)씨를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김씨는 이날 “평소에도 가족을 폭행했는지” 등을 묻는 기자들의 말에 “아이들에게 죄송하다”고 짧게 말했다.
경찰은 이날 본인 자백과 유가족 진술을 토대로 김씨가 과거에도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해 폭행과 협박 등을 지속해온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김씨에 위치정보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위반과 가정폭력 등 혐의를 살인 혐의에 함께 적용했다고 밝혔다.
김씨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 25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출석할 때에도, 이날 오전 강서경찰서에서 서울남부지검으로 송치될 때에도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 등장했다.
김씨는 지난달 22일 오전 4시45분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 부인 이모(47)씨를 미리 준비한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도주한 혐의가 있다.
이에 김씨 죄질이 가볍지 않은데 그의 신상을 비공개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경찰은 피해자 세 자녀 신상이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신상공개를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 사유가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경찰은 지난 2016년 발생한 ‘신안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 때는 지역감정과 지역사회 평판 저하 등의 이유로 피의사 신상을 비공개했다. 또 같은해 5월 서울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강남역 살인사건’ 김모(36)씨에 대해서는 신상공개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이 지난달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29)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했을 당시에는 격양된 여론에 떠밀려 성급히 공개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은 법에서 정한 피의자 신상공개 요건에도 부합한다. 지난 2010년 4월 신설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 △피의자가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한 경우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경우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닌 경우 등 조건을 갖추면 피의자 얼굴과 이름, 나이 등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김씨는 사건 발생 전 범행 장소를 서성이고 흉기를 미리 준비하는 등 계획 범죄를 저질렀다. 또 이씨 차량에 위치추적기(GPS)를 부착해 동선을 파악했으며 범행 당시 피해자에게 가발을 쓴 채 접근했다. 이씨와 두 딸은 이혼 뒤에도 4년여 동안 김씨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이혼 뒤에도 6번이나 이사를 해야했다. 또 가정폭력은 재범률이 높다. 지난 2013년 대검찰청 형사부는 가정폭력 재범률이 급증하자 ‘가정폭력 삼진 아웃제’ 시행을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김씨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달 26일 한 네티즌은 글을 올려 “살인 사건에 경중이 없겠지만 강서구 PC방 살인사건보다 강서구 아파트 전처 살인사건이 더 중한 범죄라고 생각한다”며 “가해자는 피해자를 수십 년간 폭행, 협박하고 고통 속에 살게 했다”고 주장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