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차별금지'에 뿔난 의사들 "병원서 HIV감염자 식별못하면 원내감염은 순식간"

'HIV 차별금지'에 뿔난 의사들 "병원서 HIV감염자 식별못하면 원내감염은 순식간"

기사승인 2018-11-05 15:09:46

“HIV감염인에 대한 과도한 차별 금지는 오히려 진단에 어려움을 주고, 결국 감염인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최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HIV 감염인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 (안)’을 만들어 의료계 등에 의견 조회를 진행 중인 가운데 병원 의사들이 강력한 우려를 제기했다.

5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HIV 감염인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 (안)’을 즉각 폐기하고, 현실성 있는 대안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HIV감염인의 의료차별을 예방하겠다는 정부의 취지와 달리 의료 현장에서는 HIV감염인의 진단과 치료에 방해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병의협)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의 가이드라인은 ‘의료서비스 제공자는 HIV 감염인 및 의심 환자와 대면하는 모든 상황에서 혐오나 경멸 등을 뜻하는 언어적․비언어적 의사표현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적시하고, ‘동성애 등 성 정체성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차별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의료 차별의 예시로 들고 있다.

이에 대해 병의협은 “모든 진료에서 문진은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과정이고, HIV 감염인 진료에서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한 구체적인 질의와 사실 확인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문진 과정에서 언급될 수 있는 동성애와 같은 표현들에 대해서도 차별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의료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사들은 환자의 질병과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서 환자의 성기를 진찰할 수도 있고, 과거력 문진을 통해 부끄러울 수도 있는 환자의 사생활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며 “그런데 HIV 감염자에 대해서만 이러한 문진이나 진찰의 과정에서 의료 차별의 개념을 대입하면, 이는 오히려 진단에 어려움을 주게 되어 결국 환자가 제대로 치료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HIV 감염인에 대한 식별은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의료 종사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별을 이유로 의료기관에서 HIV감염인에 대한 표시(의료인만 알 수 있는)조차 못하게 한다면 의료기관 종사자들의 HIV 2차 감염을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병의협은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의료 종사자들은 직업 특성상 환자의 체액, 혈액 등 다양한 감염원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국내 의료 환경 때문에 의료 종사자들이 자신의 안전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고, 그 중 흔한 사고가 바로 주사침 자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부분의 의료기관들은 B형 간염, C형 간염, 매독, HIV 등 주사침 자상으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질병을 가진 환자들을 구분하여 의료진들만이 알 수 있는 약속된 식별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서 직원들은 주사침 자상 등의 사고를 당해도 즉각적인 대처를 할 수 있어 안전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차별이라고 예시한 ‘처방전이나 챠트 등 의료기기에 감염 여부를 표시’하는 행위는 처치 과정에서 해당 의료진이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감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필수적인 행위인 것이지 환자를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런 현실을 모르고 그릇된 편견에 사로잡혀 감염병 전파를 막고,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차별이라고 규정하는 질본은 반성해야 한다”고 규탄했다.

이어 “만약 질본의 가이드라인대로 ‘의료서비스 제공자는 의료기관 내에서 HIV 감염인 임을 식별할 수 있는 별도 표시는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면 이는 HIV 감염자에 대한 기피 현상을 심화시키고, HIV 감염자에 대한 의료차별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 자명하다”고 일갈했다.

또한 이들은  “의료 제공자에 대한 처벌 강화로는 의료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질본의 가이드라인은 의료차별이 발생할 경우에 의료법 제15조 제1항 및 89조에 근거해 1년 이하의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고,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6조 및 60조에 근거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병의협은 “가이드라인을 강제로 지키게 하기 위해서 의료기관과 의료 제공자를 겁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들은 “종합병원 이상의 의료기관들은 HIV 감염자를 포함한 감염병 환자들에 대한 관리 시스템이나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나, 중소병원이나 의원급에는 이러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다. 결국 중소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 들은 HIV 감염자 등의 감염병 환자들을 어쩔 수 없이 전원 해야 한다”며 “일률적으로 모든 의료기관들이 가이드라인을 따르게 하고 만약 이를 따르지 않을 시 처벌하게 되면, 중소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들은 HIV 감염자가 방문하지 않기를 더욱 바랄 것이며 이는 또 다른 방식으로의 차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병원 의사들은 또한 “HIV 감염자에 대한 의료 서비스 제공이나 관리에는 전문적인 지식의 의료진이 필요하고, 이들을 위한 시설이 갖추어 진 곳에서 행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료진의 구축과 시설의 구비를 정부가 해서 HIV 감염인들에게 제공해야 HIV 전파를 막고, 진정으로 HIV 감염인에 대한 의료차별이 사라질 수 있다”며 정부에 관리 책임을 되물었다.

아울러 병의협은 “인권에 대한 근시안적인 접근과 의료 현실에 대한 무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HIV 감염인 의료차별 예방 가이드라인 (안)’은 현실화 될 수도 없다. 가이드라인 제정을 통한 의료기관에 대한 압박은 정상적인 진료행위를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오히려 HIV 감염인들에 대한 편법적 의료차별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가이드라인 즉각적인 폐기를 요구했다.

이어 “정부가 가이드라인 시행을 강행하고, 이로 인한 HIV 원내 감염 발생 시 질병관리본부를 대상으로 사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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