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뷰티풀 데이즈’, 살아남는다는 것

[쿡리뷰] ‘뷰티풀 데이즈’, 살아남는다는 것

‘뷰티풀 데이즈’, 살아남는다는 것

기사승인 2018-11-21 00:01:00

가족을 떠난 엄마를 14년 만에 만났다. 붉은 가죽 재킷에 붉은 파마머리, 술집 사장이라는 엄마의 모습은 무척 낯설다. 아빠는 집에서 죽어 가는데, 엄마는 웬 건달 같은 남자와 동거한다. 아들은 참지 못하고 말한다. “이러려고 우릴 버리고 떠났소?”

영화 ‘뷰티풀 데이즈’는 조선족과 결혼해 중국에서 살던 탈북 여성이 가족을 떠나 남한으로 오게 된 사연을 보여준다. 중국 거주 탈북 여성이 겪는 인권 유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담담하게 펼쳐낸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 대학생 젠첸(장동윤)은 아빠(오광록)의 부탁으로 엄마(이나영)를 찾아 한국에 온다. 엄마는 술집을 운영한다. 여자들은 술과 함께 웃음도 판다. 엄마의 집엔 시커먼 남자가 같이 산다. 엄마의 애인(서현우)이다. 젠첸은 이 남자가 거슬린다. 하지만 제일 이상한 건 엄마다. 14년 만에 만난 아들을 끌어안지도, 통곡을 하지도 않는다. 무덤덤한 얼굴로 삼겹살을 사 먹이고, 비싼 정장을 사 입히고, 돈 몇 푼을 쥐어줄 뿐이다. 

시종 무미건조해 공허해 보이기까지 하는 엄마의 얼굴은, 그의 지난 역사가 드러나면서부터 다르게 읽힌다. 작품은 중국 거주 탈북 여성들이 겪는 인권유린을 화면 안으로 옮겨왔다. 다큐멘터리 ‘마담B’ 탈북 여성의 실존적 삶을 고찰한 윤재호 감독의 솜씨다. 중국에서 탈북 여성은 ‘검은 사람’이라고 불린다. 죽으면 그냥 길에 버리면 된다고 인식될 만큼 천한 신분이란 의미에서다. 엄마의 시간엔 탈북 여성들의 비참한 역사가 그대로 새겨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살아남는다. 작품에서 특별한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채 그저 ‘엄마’로 불리는 이 여성은, 역설적으로 실존적인 존재로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생존사의 틈바구니에는 희미한 온기가 끼어든다. 팔려가듯 결혼한 조선족 남편과 아들, 심지어 무뢰한 같은 애인도 그에게 유대감을 보여준다.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은 이런 유대를 토대로 완성된다. 거듭되는 비극에도 ‘뷰티풀 데이즈’가 희망적으로 읽힐 수 있는 이유다.

아름다운 영상과 배우들의 호연도 작품에 힘을 보탠다. 영화 ‘하울링’ 이후 6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이나영은 말(言)보다 표정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다만 엄마의 비밀이 드러나기까지의 전개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감정을 누른 연출은 인물에 대한 호기심까지 함께 누른다. 그래도 작품이 품은 진실과 메시지는 긴 인내의 값어치를 해낸다. 21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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