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격자 대리수술과 유령수술 근절을 위한 최선책은 무엇일까.
최근 대리수술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22일 서울 도심에서는 ‘수술실 불신’ 해결을 위한 환자·소비자단체와 의사단체의 기자회견이 각각 열렸다.
환자·소비자들은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를 해결책으로 내놨다. 한국환자단체연합과 의료사고 유족, 그리고 소비자시민모임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자의 수술실 안전과 인권을 위해 CCTV 설치 법제화에 나서달라”며 국회에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가 유령수술·대리수술을 예방할 수 있다고 봤다. 또 의료사고가 생겼을 경우 대리수술 여부 확인 등 환자의 알권리도 보장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수술실 CCTV가 감시용 카메라가 아닌 ‘범죄 예방용’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환자단체는 “인적이 드문 공원이나 골목길에 CCTV를 설치한다고 해서 그곳을 왕래하는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지 않는다”며 “환자들이 요구하는 수술실 CCTV는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의 신체 부위를 정밀하게 촬영하는 것도 아니다. 누가 수술실에 들어가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의 영상 촬영을 요구할 뿐”이라며 의사단체 등의 우려에 반박했다.
기자회견에는 의료사고 피해자 유족들도 참석했다. 앞서 지난 2016년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무자격자에 의한 대리수술(안면윤곽수술)을 받다 뇌사에 빠진 故권대희씨의 어머니 이나금씨는 “당시 의사는 환자를 간호조무사에게 맡기고 방치했다. 그런 의사의 입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 나오더라”며 “수술실 CCTV가 없었더라면 이런 사실이 밝혀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해당 성형외과에 설치된 CCTV 영상을 통해 대리수술 여부를 알게 됐다.
의료사고 피해자 故김점례씨의 아들 김인규씨는 “수술실CCTV는 환자의 인권을 지킬 뿐만 아니라 수술실에서 이뤄지는 폭언·폭행을 막아 의료인의 인권도 지킬 수 있다”며 “의료인과 환자의 안전을 위해 수술실 CCTV설치 법제화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의사단체는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으로 ‘수술실 불신’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서울의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준법진료’를 선언했다.
의협은 대리수술·유령수술의 근본원인을 ‘의사의 과도한 격무와 낮은 의료수가’로 진단하고, 준법진료 선언문에 ▲의사들의 근무시간 준수 ▲의료기관 내 무면허, 무자격 의료행위 금지 ▲전국 실태조사와 제보접수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의협은 “전공의 주당근무시간을 80시간으로 제한하는 전공의법 시행 1년을 경과하고 있는 현시점까지도 이를 지키는 병원은 드문 실정”이라며 “대한의사협회는 전공의 회원들의 근무환경개선과 환자안전을 위해 근무시간의 엄격한 준수를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의협은 “다수 병원 의사들은 근로기준법상 규정된 근로시간이 아닌, 사실상의 휴식 시간 없이 24시간 대기에 주 7일 근무를 하고 있다”며 “어떤 의사가 충분한 휴식 없이 환자의 상태에 따른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느냐. 최상의 상태에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확보되지 않은 의료기관에서는 진료를 금지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의협은 무자격자에 의한 의료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전국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익명제보를 받아 불법행위 여부를 조사하고, 해당 의료기관에 시정 요청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의협이 내놓은 대책은 주로 대형병원 상황에 초점이 맞춰져있어 실제 대리수술 피해자들의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성형외과, 정형외과의원 등 비급여 진료항목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실상 영리병원에서 대리수술·유령수술 피해가 만연한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형외과 대리수술 피해자 유족 이나금씨는 “의사협회의 준법진료 선언은 대형병원을 기준으로 낸 대책이다. 그러나 대리수술 문제가 일반 성형외과, 정형외과에서 특히 많이 일어난다는 점을 간과했다”며 “돈벌이를 위해서 여러 수술장을 열어놓고 유령의사, 무자격자가 수술하는 사례가 개인병원에 정말 많다. CCTV가 없으면 환자들은 불법행위가 벌어져도 알 수 없는 억울한 현실임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의사단체가 실태조사를 한다면 반드시 1차병원과 2차병원, 그리고 3차병원의 대리수술·무면허수술 실태를 구분해서 조사했으면 한다”며 “의사의 과로 때문에 판단력을 흐린다는 점은 대학병원의 이야기이고 개인병원의 대리수술은 개인의 욕심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덧붙였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