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인중독자에 처방헤로인을"…마약·알코올·담배, 끊지말고 줄이자?

"헤로인중독자에 처방헤로인을"…마약·알코올·담배, 끊지말고 줄이자?

헤로인 중독자에 처방헤로인 제공, 노숙자에 알코올 지원 등 파격 정책 제안

기사승인 2018-11-29 03:00:00

헤로인 중독자에게 처방헤로인을 제공하는 ‘헤로인 관리프로그램’은 국내에서 수용될 수 있을까. 알코올문제가 있는 노숙자에게 제한된 양의 알코올을 지원하는 정책은 어떨까.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독자의 인권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제로 열린 위해감축정책의 성과 및 제도 도입 방안 토론회에서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존의 근절 위주 중독관리 정책은 실효성이 낮았다"며 유럽 등 국가의 위해감축정책을 소개했다. 우리도 검토해보자는 취지다.

위해감축(Harm Reduction)이란 약물(마약), 알코올, 도박, 그리고 담배 등 중독성이 강한 물질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접근을 ‘근절’이 아닌 ‘최소화’또는 ‘감축’을 목표로 삼는 개념이다. 유럽 기반의 비영리단체인 국제위해감축협회(Harn Reduction Internation) 등에서 정립됐다.

이를테면 약물(마약)중독 환자에게 약물사용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약물이나 대체재를 국가가 처방하는 것이 폐해를 줄이는 데 보다 효과적이라는 시각이다.

이 관점에서는 중독자가 위해물질을 끊을 수 없어 범죄자가 되거나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하는 것보다 국가가 합법적인 틀에서 제공·관리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중독자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사용량 감축에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어쩔 수없이 약물이 필요한 중독자나 간헐적으로 약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불법경로로 약물을 구입할 경우 과다복용 및 사망위험이 커지는 등 사회적 위해가 크다. 이에 감축정책을 통해 약물사용자 및 사회 전체의 위해를 감소시키자는 것”이라며 “스위스나 독일은 중독자에게 처방헤로인을 제공하는 것을 건강보험체재의 일부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알코올중독이나 도박도 같은 선상에 뒀다. 특히 알코올중독자의 경우 ‘금주’가 아니라 ‘절주’가 목표다. 박 교수는 “미국 약물정책연대는 금주를 목표로 하는 알코올중독자 자조모임(Alcoholic Anonymus·AA)의 12단계 프로그램이 효과가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폭음내지 과음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75년간의 프로그램 실행 경험의 대안으로 위해감축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이어 “캐나다나 미국의 경우 노숙자 쉼터에 입주하는 노숙자들에게 제한된 범위의 알코올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노숙자들의 음주량이 줄고 많은 예산을 절감했다”며 “우리나라도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에게 술을 제공하는 운동이 시민단체 중심으로 일부 이뤄지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에서는 담배나 비만(다이어트) 관련 정책도 흡연자와 비만인의 인권과 건강권을 생각해 위해감축 정책으로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박 교수가 소개한 모든 ‘위해감축’사례가 국내에서 수용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손애리 삼육대학교 보건관리학 교수는 “마약이나 약물은 소수의 이용자의 일탈적 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 따라서 사회적 비난이나 낙인보다는 위생적 주사기 교육, 저농도 마약제공이 효과적일 수 있다”며 “다만 국내에서 음주는 일탈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교수단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인권존중보다는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고, 음주를 조장하는 환경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김영호 을지대학교 중독재활복지학 교수는 “위해감축과 금지 정책 두 가지가 공존해야 한다. 의료영역서는 금지를 중점으로 하는 치료서비스가, 지역사회에는 위해감축 정책이 필요하다”며 “그런데 지역사회에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알코올중독환자가 150만 명 정도인데, 지역상담센터에서 이들을 담당할 인력은 전국에 150여명에 불과하다. 중독관련 예산을 모아서 총괄하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사회적 통념상 약물중독의 대안을 ‘감축’으로 삼는 것은 장벽이 있겠다. 또 노숙자에게 알코올을 제공하거나 위생적인 약물 투여 장소를 제공하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며 “중독 상태가 심한 계층에 불가피한 선택으로 감축프로그램을 적용할 수 있겠지만 위해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고, 있더라도 답보하거나 원상태로 돌아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실패사례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위해감축 개념이 자칫 기업의 마케팅수단으로 악용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정영기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 건강중진과장은 “담배관련정책의 경우 금연부스 지정, 광고금지, 대국민 홍보 등 정부의 흡연예방정책을 점진적으로 보면 위험요인을 줄이는 위해감축 개념이 녹아있다. 80년대 성인남성 10명 중 8명이 흡연을 했지만 현재 33.1%로 주는 등 효과도 높았고, 아직 이행하지 못한 WHO 정책이 남아있어 앞으로 시도할 정책이 많은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앞서 나온 의견과 마찬가지로 위해감축과 관련된 제안들이 혹여 기업의 마케팅전략으로 활용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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