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가 없으면 대리수술이 있어도 아니라고 하겠죠. 환자들이 어떻게 아나요?”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은 이나금씨의 말이다. 지난 6일 국회 앞에서 ‘수술실CCTV 법제화’ 1인 시위를 진행하던 이씨는 “수술실CCTV가 있어도 의료사고를 입증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데 없는 사람은 오죽하겠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취업준비생이던 아들 故권대희씨는 지난 2016년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턱 성형수술을 받다 과다출혈로 뇌사에 빠진 후 숨졌다. 이씨는 해당 성형외과에 설치된 CCTV 영상을 통해 대리수술 여부를 알게 됐다.
이씨는 “CCTV 영상을 300번 이상 돌려보면서 문제점을 찾고 또 찾았다. 의사 대신 간호조무사가 처치하고, 수술도 동시에 여러 수술이 이뤄지더라”며 “수술실 CCTV가 있어도 의료사고를 입증하는 것이 어려운데 영상조차 없는 환자는 진실을 알 방도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아직 병원과 의료사고 소송을 진행 중이다.
‘수술실 CCTV 법제화를 요구하는 환자단체의 릴레이 1인 시위가 벌써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지난달 22일 환자단체는 수술실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될 때까지 1인 시위를 진행하겠다고 알렸다.
무자격자 대리수술과 유령수술, 그리고 수술실 의료진이 환자를 추행하거나 조롱한 사건이 잇따르면서 ‘수술실 CCTV’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관련 입법발의는 0건. 일부 의원실에서는 수술실 CCTV관련 의견수렴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입법발의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수술실 CCTV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세계 첫 사례인 점, 그리고 의사단체의 극렬한 반대가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일단 국공립 의료기관에 CCTV를 우선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의료기관의 자율 설치를 권장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비의료인 수술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는 우려에 공감한다”며 “우선 환자 동의하에 CCTV 자율 설치를 권장해 나갈 계획이다. 의무화하는 것은 의료법 개정이 필요하므로 경기도 시범사업 결과를 살펴볼 것”이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 수술실 CCTV를 자율적으로 설치한 개인 의료기관도 나오고 있다. 환자 불신을 해소할 방편으로 CCTV를 달게 됐다는 설명이다. 플러스병원 측은 대리수술 논란이 불거진 이후 지난 11월쯤 병원 내 모든 수술실에 CCTV 설치·운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 대표는 “현재 수술실의 안전과 인권 문제는 적정 수위를 넘겨 국민적 불안이 됐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의료계가 빠르게 근절의지를 보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국민 신뢰를 잃고, 결국 '수술실 CCTV'요구로 진화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안 대표는 “수술실 CCTV은 의사를 감시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어느 집단이나 나쁜 사람은 있고, 국민들은 일부 나쁜 의사를 불신하고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지 다수의 의사는 신뢰한다”며 “국민과 선량한 다수의 의사가 협력해 나쁜 의사, 나쁜 의료를 근절하는 데 동참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