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학교병원 내부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열악한 근로환경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조합과 현실을 감안해 서로 발전적인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자는 병원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법정다툼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해와 올해 의료기관 내 선정적 장기자랑 강요와 관련된 ‘미투(#MeToo)’ 폭로에 의료기관 종사자들의 근로조건과 처우문제가 연이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며 고용노동부가 올해 초 전남대병원을 포함해 50개 병원의 근로조건 자율준수 점검을 한 결과가 나오면서다.
고용부에 따르면 전남대병원은 총 33개 근로조건 법위반 관련 점검항목 중 14개 항목을 위반했다. 위반항목은 ▲서면근로계약 위반 ▲계약직 서면근로계약 위반 ▲퇴직 후 14일 내 금품 미청산 ▲최저임금 내용 안내 미이행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미실시 ▲고충파악에 따른 적절한 조치 위반 등이다.
특히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수당 미지급 ▲임금전액 미지급 ▲근로시간 미준수 ▲당사자 동의 없는 연장근로나 1주 12시간 초과 연장근로 지시 ▲임신여성 연장근로 ▲연차유급휴가 사용제한 ▲휴게시간 미부여 ▲생리휴가 사용제한과 같은 정부의 일자리정책과 배치되는 사항들도 포함됐다.
이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노조)와 소속 전남대병원지부는 병원의 근로조건 위반사항을 즉각적으로 개선하고 초과근무수당 등 지급하지 않았던 임금을 지불하라고 촉구했다. 지부가 추산한 미지급금 규모만 3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병원은 14개 항목 중 임산부 연장근로제한 과 최저임금 주지의무 2개 항목만 시정했을 뿐 나머지 12개 항목은 제대로 개선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초과근무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추산금액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며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이와 관련 보건의료노조는 “전남대병원은 근로조건 관련 법위반사항을 적발 당했는데도 시정할 의지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면서 “국립대병원으로 정부의 근로조건 자율준수 정책에 따른 법 이행은커녕 지원사업 자체를 무력화하는 뻔뻔스런 작태와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내몰고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노사관계 파국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주52시간제 도입, 안전한 병원을 위한 인력충원에 대한 합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는 근로조건 자율개선 지원사업을 빈껍데기로 만들며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내모는 전남대병원의 법위반 행태를 더 이상 묵과하지 말고 특별근로감독에 나서야할 것”이라고 우려와 함께 뜻을 전했다.
반면 병원은 일련의 요구에 ‘오히려 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편할 것 같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병원 측 관계자는 “연장근로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나 근거가 없는 요구”라며 “일부 특수 진료과에서 발생한 연장근로를 전 직원에게 적용해 3년치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라고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 내부에서도 근로조건 자율점검이 노조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는데다 말 그대로 자율이니 응하지 말자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병원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라며 자율점검을 받기로 했는데 혹시가 역시가 됐다”며 “초과근로 등 미지급금이 있다면 지급할 것이다. 안 준다는 것이 아니다. 초과근로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병원과 노조 간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자율점검이었던 만큼 노조가 요구하는 특별근로감독 등 직접적인 개입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결과가 병원에 통보된 만큼 노조와 병원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초과근로수당 미지급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인력충원을 구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정책을 보다 충실히 이행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실제 지난 18일 고용부 고위직 공무원들과 국립대병원 행정책임자들이 가진 간담회에서 고용부는 미지급금에 대한 언급없이 2019년 1/4분기 내 정규직 전환에 대한 가시적 성과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노조 관계자는 “초과근로수당 미지급 문제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모두 해결해야할 문제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둘 모두 예산이 필요한 문제”라며 “정부가 한 쪽에 방점을 찍고 병원을 압박하면 우선순위가 정해지고 다른 하나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 또한 “정부정책 수행의 최선두에 서야 할 공공병원이 모든 의료기관의 모범이 되지 못하고 악질적 노사관계와 법위반을 자초하고 있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돼야한다”며 “정부당국이 특별근로감독을 바탕으로 법위반 시정과 노사관계 정상화를 위한 근본 해결방안을 마련해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