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4일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10개월이 지난 현재 8만 6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경기 지역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으며, 연명의료중단 결정 이행 건수도 2만 8000건을 넘었다. 다만 일반인·의료인 대상 홍보 및 교육 예산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 빠른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은 27일 서울시 중구 세종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이같이 밝혔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정립한 제도다. 여기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는 의료진으로부터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를 받더라도 회복이 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라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자를 말한다.
국생원에 따르면 12월 3일 기준 총 168개 의료기관에서 의료기관윤리위원회에 등록했다.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및 그 이행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려는 의료기관은 반드시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상급종합병원은 100%의 등록률을 기록했으며, 종합병원은 30.1%, 병원 0.6%, 요양병원은 1.4%였다.
병원과 요양병원의 등록률이 저조한 이유에 대해 이윤성 국생원장은 “상급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한 환자가 요양병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오히려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된 기관은 94개였다. 지역보건소 23개, 의료기관 49개, 비영리법인 및 단체 21개, 공공의료기관 1개 등이다. 의향서 등록기관에는 1200명 이상의 상담사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국생원의 설명이다. 의향서 등록자 수는 시행 4개월 차인 6월 3일 2만 6417명에서 지속적으로 늘어 12월 3일 8만 6691명으로 집계됐다. 남성은 2만 8323명, 여성은 5만 8368명이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지역별 분포 현황을 보면 서울과 경기가 각각 26.9%, 27.6%로 가장 많았다. 이어 충남이 9.4%, 전북이 6.4%, 인천이 5.3% 순으로 많았다. 김명희 국생원 연명의료관리센터장은 “충남이나 전북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가 많은 이유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북은 거의 대부분의 지역 보건소가 등록기관으로 지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 수는 1만 3182건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달리 남성이 8300건, 여성 4882건으로 남성이 더 많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 성인이 향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됐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밝혀두는 것이고,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환자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담당의사와 상의해 문서로 남기는 것이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이행한 건수는 총 2만 8256건으로 남성이 1만 7013명, 여성이 1만 1243명이었다. 백수진 국생원 연구부장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자 성별 비율에 대한 분석은 추후 대국민 인식 조사를 통해 세밀하게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자리에서는 여전히 의료현장에서는 환자 및 가족과의 갈등, 제도에 대한 이해 등의 이유로 혼선을 빚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반인은 물론 의료진 대상 홍보 및 교육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윤성 원장은 “일반인은 (이 제도가) 본인이 인공호흡기을 떼고 싶어 하면 뗄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명의료 중단은 의학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법의 취지를 오해하는 것”이라며 “의료진들도 ‘정말 호흡기를 떼도 되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 이 제도에서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호흡기를 떼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김명희 센터장은 “이 제도는 일반인의 이해도 중요하지만 의사의 인식이 정말 중요하다. 의사라고 해서 연명의료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학회 등을 통한 교육이 필요하다”며 “또 고령사회로 변화하고 있고 단독가구, 비혼 인구가 늘면서 언젠가는 죽음에 대해 자기 결정권이 중요한 시대가 올 수밖에 없다. 임종기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 것이냐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지만 홍보, 교육에 대한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연명의료결정제도 관련 내년도 예산은 51억이다. 이중 20억은 전산구축 및 고도화로 사용돼 실제 운영비는 30억원 정도”라며 “여기서 홍보비는 6억 5800만원 정도인데, 일반인을 포함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관련 전문직역별 대상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