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이제…” “안 돼!” 지난달 30일 서울 올림픽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 베스트’(The Best) 콘서트 현장. 가수 이문세는 앙코르 첫 곡으로 고른 ‘이별이야기’의 마지막 소절을 쉽게 부르지 못했다. “안녕”이라는 가사가 들어갈 자리마다 “안 돼”를 외치던 관객들 때문이었다. 이문세는 관객들을 달래듯 팔을 부드럽게 휘둘렀다. 몇 번이나 같은 소절을 반복한 뒤에야 노래는 끝을 맺을 수 있었다.
‘더 베스트’는 제목 그대로 이문세의 히트곡을 엄선해 선보이는 자리다. 2016년 이후 2년 만에 다시 열렸다. ‘휘파람’으로 문을 연 공연은 ‘소녀’, ‘사랑이 지나가면’, ‘빗속에서’, ‘조조할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등으로 이어졌다. 29일부터 3일간 열린 이번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했다. 앞서 개최된 부산, 대구, 광주 공연도 모든 티켓이 팔려나갔다.
예순을 맞고도 이문세는 청년 같았다. 회춘한 듯 젊어진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흥분과 즐거움으로 반짝이던 그의 두 눈은 젊은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관객들을 바라보며 짓던 수줍은 미소와 다정한 눈빛도 마찬가지였다. 1만 2000여명의 관객이 한 목소리로 ‘소녀’를 부를 땐 벅차다는 듯 객석을 훑었다. 공연장에서 만난 한 30대 남성은 검은 코트를 입고 나타난 이문세를 보고 “드라마 ‘도깨비’의 공유 같다”며 즐거워했다.
공연은 다양한 장르와 세대를 어울렀다. ‘국민 가수’라는 이문세의 명성답게 거의 모든 곡에서 ‘떼창’이 터져 나왔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옛사랑’이 그랬다. 그의 고독이 깊게, 차분하게, 우아하게 내려앉자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압도적이기로는 ‘그녀의 웃음소리뿐’도 지지 않았다. 이문세가 토해내는 짙은 비통함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파노라마 스크린을 활용한 웅장한 연출부터 아날로그 분위기를 살린 아기자기한 소품까지 볼거리도 풍성했다. 본디 응원봉을 좋아하지 않는다던 이문세는 이날만큼은 특별히 흰색 야광봉을 관객들에게 뿌렸다. “이걸로 여러분의 마음을 보여 달라”는 당부도 뒤따랐다.
이문세의 지난 1년은 바쁘게 지나갔다. 2017년부터 이어오던 ‘씨어터(THEATRE) 이문세’의 공연을 지난해 2월 마무리 짓고 곧장 미국으로 날아갔다. 해외 순회를 위해서였다.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뉴욕에서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에는 캐나다와 호주 팬들도 만났다. 여름엔 내내 새 음반 작업에 매달렸다. 지난해 10월 나온 정규 13집 ‘비트윈 어스’(Between Us)가 그 결과물이다. 이번 공연에서 이문세는 타이틀곡 중 하나인 ‘희미해서’를 소개하며 “시간이 지나고 희미해지면서 모든 것들이 더 아름다워진다는 노랫말이 참 좋았다”고 했다.
앙코르 무대의 마지막 곡으로 ‘그대와 영원히’를 넣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전 곡 ‘이별이야기’가 안녕을 고하는 내용이었다면, ‘그대와 영원히’는 재회와 영원에 관한 약속이었다. 관객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노래를 따라불렀다. 품에는 이문세가 앞서 나눠준 ‘문세라면’을 꼭 쥔 채였다. 이문세는 끝까지 낭만적이었다.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자는 당부와 함께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공연은 이제 끝났지만 어쩌면 저는 지금 이 순간부터 여러분이 그리울지도 몰라요. 정말 고맙고 사랑합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