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병원, 한의계를 향해 대한의사협회가 신년부터 날을 세웠다. 대한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 또한 의료계의 생각과는 배치되는 신년계획을 발표했다. 간호협회와 간호조무사협회는 커뮤니티 케어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등 정부정책을 두고 정면으로 충돌할 전망이다.
이들을 채용하고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경영자들의 모임인 대한병원협회도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할 입장에 처했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과 인건비를 줄여야하는 상반된 이해관계로 인한 마찰도 예상된다. 이에 보건의료계의 2019년은 각종 사건사고로 시끄러웠던 2018년과 다른 의미에서 시끄러워질 것으로 보인다.
◇ 안전한 환자치료는 의과의사만의 영역?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2019년에는 보건의료 관련 정책이 올바르게 수립되고 의사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돼 의사의 권익이 지켜질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하겠다며 6가지 사안을 꼽고 집중적으로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들이 내세운 계획이 정부를 비롯해 대형병원과 약국, 한의사를 저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의협은 해묵은 논쟁이지만 한 치도 의견조율을 하지 못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문제와 한의학의 안정성 논란을 지속적으로 문제삼을 것으로 보인다.
최대집 회장은 “한방의 의과 의료기기 사용저지, 일반·전문 의약품 사용을 비롯해 혈액검사 의뢰 등 한방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해 실질적인 조치가 취해질 수 있도록 확실하고 실효성 있는 법적,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여기에 의협이 지금까지 주장해온 바를 종합해 살펴보면, 한약의 안전성 등을 뒤로하더라도 최소한 전통적 한의학 지식과 도구를 통한 진료 외에는 모두 면허범위를 벗어나는 ‘무자격 의료행위’인 만큼 환자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어 결단코 막겠다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이에 반해 대한한의사협회 최혁용 회장은 신년사에서 “국민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한의사가 역할과 영역의 제한이 없는 ‘포괄적 의사’가 돼야한다”며 “제한된 도구의 전문가가 아닌 의료행위의 전문가로 위상을 구축할 것”이라는 상반된 목표를 내세웠다.
아울러 한의사가 포괄적 의사이자 의료행위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의료의 통합과 의료일원화, 한의사의 행위와 도구의 전면적 급여화, 한의사의 공공의료 참여, 천연물 유래 의약품과 한약제제에 대한 처방권 확보 등 한약의 현재화와 같은 세부과제도 내걸었다.
◇ 의협, 문재인 케어 등 정부정책에 또 다시 강경대응?
의사협회의 화살은 정부로도 향했다. 당장 의협회장은 “지난 9월28일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을 필수의료 중심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의학적 원칙에 부합하게 점진적,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며 “만약 정부가 일방적으로 비급여의 대폭 급여화를 강행할 경우 의정합의 파기로 간주해 강력한 대정부 투쟁에 다시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의사협회와 정부 간 관계는 점점 악화일로를 걷는 듯하다. 9월 의정협의 후 10월 6차 의정실무협의가 한차례 이뤄졌지만 이후 논의는 중단된 상태다. 더구나 의사협회가 반대해온 건강보험 심사체계 개편이 의협이 탈퇴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확정됐다.
심지어 경기도의료원 산하 의료기관의 수술실 CCTV 설치·운영, 추나요법 등 한의학적 치료행위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적용 등도 의협의 반대가 무색하게 당초 계획대로 혹은 이해당사자간 합의대로 추진됐다.
반대로 객관적인 의료감정을 위한 독립기구 설립이나 의사사회 자체적인 면허관리기구 구성, 전달체계 개편 및 적정진료를 위한 수가정상화 등 의료계가 요구하는 사항들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나 답변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 때문인지 최대집 회장은 지난달 28일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진찰료 인상과 처방료 부활은 그간 의료계의 희생으로 유지된 의료제도에 대한 최소한의 정당한 보상안”이라며 1월31일까지 의료계 요구사항에 대한 답이 없을 경우 집단휴진 등 강력한 대응에 나서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 의협, PA 등 병원인력 두고 병협과도 대립각?
의협은 한의협이나 정부는 물론 같은 의사이자 병원 경영자들이기도한 이들의 모임인 대한병원협회와도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의협이 내놓은 6가지 추진과제 중 하나가 앞서 발표한 ‘준법진료’와 관련해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등 대형병원의 근로기준법 준수 및 올바른 진료환경 조성이기 때문이다.
의협은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준법진료를 정착시키고 근로기준법에 따른 교수, 봉직의들의 근로시간과 휴식시간이 준수될 수 있도록 하겠다. 아울러 전공의특별법에 따라 전공의 수련시간과 근로시간 준수, 의료기관 내 무면허 의료행위 근절에도 힘쓰겠다”고 전했다.
여기에 준법진료를 선언할 당시 2019년 상반기까지는 정착을 위한 자율점검 및 시행기간으로 삼고 현황파악에 주력하겠지만, 하반기부터는 시정 및 개선요구를 포함해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대응 등 강경한 대처에 나서겠다는 뜻도 함께 밝혀 병원계를 압박했다.
하지만 병원계는 지금까지 근로기준법 및 전공의특별법 준수, PA(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인력)를 위시한 간호인력의 업무영역 및 적정근로를 위해서는 충분한 수의 의료인력을 확보해야하지만 의료기관 만의 노력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대한병원협회 임영진 회장의 신년사에서도 “보장성 강화 정책기조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신생아실 감염사건, 대리수술 파장, 의사 법정구속 등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았다”면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여러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해당사자 간 소통과 공감으로 중지를 모아야 한다. 통근 대화로 상생할 수 있는 의료생태계를 조성하자”고 ‘이행’이 아닌 ‘협의’를 말했다.
◇ 복잡한 역학관계 얽힌 간호간병통합서비스와 커뮤니티 케어
의협과 병협의 근로조건 및 업무영역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인 병원 내 인력문제는 비단 병원과 의사 사이의 쟁점만은 아니다. 의료기관은 의사 외에도 여러 직역이 환자진료를 위해 협업하는 장소인데다 일자리 관련 정부정책과도 맥이 닿아있는 핵심기관으로 적정인력 및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과의 마찰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특히 정부가 ‘간병비 걱정 없는 병원’을 모토로 추진 중인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정착이나 지역사회 통합돌봄 체계를 뜻하는 ‘커뮤니티 케어’의 시행을 위해서는 간호인력의 확충이 불가피해 인력수급을 두고 간호계와 병원계, 정부 간의 갈등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게다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의 역할갈등도 심각하다.
실제 신경림 간호협회장은 국민 중심의 보건의료체계 혁신에 간호사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대한민국 보건의료 패러다임의 변화를 간호사가 주도하겠다”며 수가체계 개편, 커뮤니티 케어 실현,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및 통합재가서비스 구축 등 정부 정책에서 간호사가 중심이 돼야한다면서 정부와 국회가 힘을 보태고 있다는 긍정적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반면 간호사와 업무영역에서 마찰을 빚고 있는 간호조무사들의 단체인 대한간호조무사협회 홍옥려 회장은 2019년을 ‘보건의료인으로서 간호조무사 위상강화의 해’라고 선포했다. 이어 노인장기요양 및 커뮤니티 케어사업의 조직구성, 간호등급제 이행을 위한 중소병원의 간호인력 수급문제 등의 해법으로 간호조무사 활용만이 답이라고 주장했다.
간호조무사협회를 법정단체로 인정받고, 방문건강관리, 치매 및 호스피스 사업 등 보건의료정책사업, 공공분야 인력기준에 간호조무사를 포함시킬 수 있는 제도 개선과 1차의료기관 만성질환 관리사업에서의 간호조무사 케어코디네이터 자격부여 및 보건소 등에서의 간호조무사 역할 확대 등도 이뤄내겠다는 공약도 내걸어 간호사들과의 업무영역다툼을 예고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