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시의 본섬인 거제도는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과거 고려·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왕족과 귀족들의 대표적 유배지였다. 무신정변의 주요 원인 제공자인 고려왕 의종(毅宗), 연산군 때 갑자사화에 연루된 유배객들, 근현대에 들어서는 6.25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에 약 20만명의 포로가 수용됐던 비극적 장소이기도 했다.
얼핏 들어보면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장소 같지만 거제도는 400년 전 임진왜란 당시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임란 최초의 승전인 ‘옥포해전’을 통해 전쟁의 흐름을 바꾼 의미 있는 곳이다. 옥포해전 이후 이순신 장군이 중심이 된 조선 수군이 제해권을 장악해 호남의 곡창지대를 보호하고, 왜군의 보급로를 끊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역사적 전적지이기도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거제도의 모습은 조선 산업이다. 즉 한국 ‘조선업의 심장’으로 여겨진다. 국내 조선 산업을 대표하는 업체인 ‘대우조선해양’의 조선소가 둥지를 튼 장소가 바로 거제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한국 조선업의 심장부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지난 9일 찾았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는 서울에서 비행기로 출발해 김해공항과 ‘거가대교’를 거쳐 2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있다. 과거 부산에서 거제까지만 해도 3시간이 넘게 걸려 다른 생활권이었지만 2010년 거가대교가 개통 이후 하나의 생활권으로 바뀌어 사회문화적 편의성이 크게 좋아졌다는 게 동행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바쁜 걸음으로 도착한 옥포조선소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골리앗 크레인에 그려진 ‘대우조선해양’의 사명과 방대한 부지에 펼쳐진 조선소의 풍광이다.
동행한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20세기, 1972년부터 한국 정부가 일본을 꺾고 세계적 해양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계획에서 시작된 곳이 옥포조선소”라며 “정부는 미국, 유럽 각국의 조선소를 둘러보고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탁월한 조선소 입지를 가진 장소로 옥포만으로 선정했었다”고 옥포조선소 탄생의 배경을 소개했다.
그의 설명처럼 1970년대 한국 해운·조선업계의 선구자인 고(故) 남궁련 회장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조선업의 발전 가능성을 일찍이 깨닫고 1968년도 민영화된 대한조선공사를 통해 옥포조선소 건립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후 옥포조선소는 제1차 오일쇼크, 자금난 등 여러 부침(浮沈)을 겪었고 지난 1978년 대우그룹의 품에 안착해 1981년 완공됐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하듯이 대우조선해양 조선소는 여의도 1.5배 크기인 490만㎡(약 140만평)대지 위에 900톤의 중량물을 91.4m까지 단숨에 들어 올리는 ‘No.1 골리앗 크레인’을 비롯한 초대형 크레인 4기, 공법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선박 건조가 가능한 드라이도크(dry dock)와 플로팅도크(floating dook)가 각각 2곳과 3곳이 가동되고 있었다. 해양플랜트를 건조하는 헤비존 2곳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야말 프로젝트(YAMAL ARC7 LNGC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송하동 대우조선해양 수석 부장의 도움으로 이번 달 12일 인도예정인 선박을 둘러볼 수 있었다. 기자가 탑승한 선박은 야말 프로젝트의 15개 선박 중 하나로 열 번째 선박 니콜라이 주보프호다.
니콜라이 주보프호를 포함한 야말 프로젝트는 러시아 시베리아 최북단 야말반도에 매장된 1조2500㎥의 천연가스전을 개발해 연간 1650만톤의 LNG를 생산·운반하는 사업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29조원 가량의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현재 러시아를 비롯해 글로벌 자원개발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사업에서 대우조선해양은 선도적인 LNG운반선 기술력을 통해 1차 야말 프로젝트 선박 15척을 모두 수주해 현재까지 10척을 인도했다.(21일 기준 해당 선박은 건조를 끝내고 무사히 인도됐다.)
‘니콜라이 주보프’는 러시아 북극 탐험가이자 해양학자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탐험가 중 한 명이다. 기자가 승선한 열 번째 선박의 이름이 니콜라이 주보프로 명명된 것은 야말 프로젝트가 러시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주보프호는 너비 50m, 높이 26.5m 전장 299m의 초대형 쇄빙 LNG선이다. 63빌딩의 높이가 274m임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크기다. 계약선가는 3억2000만 달러로 전 세계에서 발주되는 LNG선 중 최고의 뱃값(선가)을 자랑한다. 선박의 최대 적재량을 뜻하는 재화 중량은 한국의 이틀간 LNG 사용량에 맞먹는 17만3600㎥에 달한다.
현장의 송하동 수석 부장은 야말 프로젝트에 관해 “러시아에 시베리아의 LNG를 판매하는 일은 항상 꿈의 프로젝트였다”며 “다만 러시아는 북극 자원을 판매하려고 해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긴 항로 탓에 경제성 확보가 어려웠다. 북극 항로의 얼음을 깨는 기술력을 대우조선해양이 러시아에 제공해 꿈을 현실화시킨 셈”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그는 승선한 쇄빙선의 가장 큰 특징도 설명했다. 그는 “선박에는 대우조선해양만의 특화된 기술력으로 설계된 360도 회전하는 3개의 프로펠러가 탑재됐다”며 “시베리아에서는 얼음이 얼어붙어 후진해 항로를 뚫어야 하는 경우도 잦다. 이를 위해 설계된 것이 방금 설명한 ‘아지포드 스러스터’(Azipod Thruster)”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제로 현재 북극해에서 다른 나라가 건조한 동일 쇄빙등급 유조선이 북극해에 고립될 위기에 처했으나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배가 쇄빙선 역할을 해주며 해당선박을 호송하고 있다”며 “그만큼 북극항로에서 이 선박의 중요성은 분명하다”이라고 강조했다.
배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보프호의 조타실에서 내려다본 옥포조선소의 규모에 다시 한번 놀랐다. 모든 도크와 안벽(배를 접안시키는 시설)에 가득 찬 LNG 선박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 수년간 수주감소로 인해 국내 조선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세계 최고를 향한 현장의 열기와 힘찬 의지가 느껴졌다.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2019년 새해 다짐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현장 관계자들에게서 “조선 강국, 대한민국”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현장 관계자들은 “LNG는 기존 에너지원처럼 매연이나 오염 물질도 원자력발전처럼 핵폐기물도 발생하지 않는다. 환경과 고효율이라는 두 가지 장점이 있는 선박 건조에 심혈을 기울여 글로벌 선박 시장에서 탑 오브 탑 자리를 반드시 유지할 것”이라며 “끊임없는 기술 개발로 조선 강국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웃어 보였다.
[용어]
*플로팅도크=해상에서 배를 건조하는 바지선 형태의 대형 구조물.
*드라이도크=육상에서 배를 건조해 완성된 선박을 도크에 물을 넣어 바다로 빼내는 구조물.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