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암사역 칼부림 사건의 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었다. 칼을 들고 있는 상대와 싸우거나 말릴 것이 아니라 도망치는 게 최우선이라는 반응, 그리고 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경찰은 적극적으로 말리거나 제압하지 않았냐는 반응. 정반대의 태도지만 어느 하나가 틀리다고 하기 어려운 문제다.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생존 본능,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는 윤리적인 욕구 중 어느 것이 우선한다 말하긴 어렵다. 문제는 그 일이 나 자신에게 일어났을 때다. 당신은 극단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도 평소 생각과 가치관을 유지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가 지난달 21일 공개한 ‘버드 박스’는 이 질문과 맞닿아 있는 영화다. 영화는 원인 불명의 괴현상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무언가’를 본 사람들이 갑자기 목숨을 끊는 현상이 급속도로 퍼져간다. 주인공 맬러리(산드라 블록)는 TV로 볼 땐 무감각했던 일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겁에 질려 근처 어느 집으로 피신한다. 그곳엔 이미 여러 사람들이 도망쳐있다. ‘무언가’를 보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는 규칙을 알게 된 생존자들은 창문을 모두 가리고 집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생활한다.
영화는 이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서로 다른 생각과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선택의 순간은 끊임없이 찾아온다. 문을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새로운 생존자를 받아들일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 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인 상식과 윤리는 생명이 위협받는 지금 순간에도 옳은 것일까.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모두가 망설일 때, 맬러리는 “그렇다”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회색 천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주인공의 포스터만 보고 잠시 착각했다. 혹시 새들이 날아와 눈을 쪼아대는 공포 영화는 다행히 아니었다. ‘버드 박스’는 긴장감 넘치는 편집과 잔인한 장면으로 시청자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보다는 종말 이후 세계에 살아남기 위해 고뇌하고 갈등하는 인물들을 다룬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 가깝다. 소리를 내면 죽게 되는 설정의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비롯해 ‘미스트’, ‘해프닝’ 등 비슷한 장르의 몇몇 영화들이 떠오른다.
‘버드 박스’는 종말 이후 조금씩 사라지는 인간다움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선 과거 중요하게 여겼던 희생이나 희망, 선의, 사랑 같은 인간적인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생존자들에게 살아남는 것보다 더 큰 현실적인 목표는 없기 때문이다.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곧 가장 비인간적인 선택이 된다. 무엇을 선택하든 자신의 과거 모습을 유지할 방법은 없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영화 ‘그래비티’를 떠올리게 한다.
등장인물의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다. 출산을 앞둔 임산부부터 두 번 이혼당한 괴팍한 노인, 종말론에 심취한 마트 아르바이트, 흑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주류가 되지 못했거나 밀려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바깥에선 스스로의 눈을 가리는 장애를 선택한다. 어쩌면 괴현상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맞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시각을 포기한 채 끝까지 발버둥 친다. 생존을 위한 규칙을 지켜가며 하루를 살아내는 생존자들의 숭고한 모습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시대를 버텨내는 사회적 약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제목인 ‘버드 박스’는 새들이 괴현상을 미리 감지하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이 들고 다니는 일종의 경보 장치다. 상자 속 어둠에 갇혀 지내는 새들의 모습은 눈을 가리고 숨어사는 생존자들과 다르지 않다. 동시에 언제든 하늘로 날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