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들의 신체적·정신적 상처를 돌보기 위해 설립된 보훈병원이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병원이 유공자들의 건강은 뒷전으로 미루고, 내부 직원들과 대내외적 성과평가를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해진 중앙보훈병원의 실태는 충격이었다. 중앙보훈병원 의사로 재직 중인 A씨에 따르면 높은 경영평가를 받아 좀 더 많은 성과급을 받기 위해 병원장과 병원 경영진,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공모해 성과를 조작했다.
전국 6개 보훈병원은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에서 평가하는 경영평가를 통해 한 해의 실적을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는 고령환자가 대부분인데다 복합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은 국가유공자들의 의료 편의성을 평가하기 위한 협진지표가 포함돼있다.
문제는 협진지표를 평가하는 방식이 전자의무기록(EMR) 상 자동으로 계산돼 점수화된다는 점을 병원이 악용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일련의 행위가 담당 전문의도 모르게 이뤄졌고, 내부 반발을 무마하거나 협조를 유도하기 위해 높은 성과급과 같은 당근이 제시됐다는 것이다.
실제 중앙보훈병원에서는 병원 경영진의 결정사항이라며 2018년 부족한 협진실적을 초과달성하기 위해 전체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협의진료를 적극 추진해달라는 요청이 적정진료실(QI실) 차원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각 진료과에서는 입원환자 담당 전문의가 직접 협진의뢰를 하거나, 간호부 등의 독려에 의해 병동 담당 전공의가 환자들의 담당 전문의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몰래 협진의뢰를 일괄적으로 한 일이 벌어졌다.
확인한 사실에 의하면 환자의 건강상태나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영양상담이나 사회공헌 등에 대한 협진이 입원환자 전체를 대상으로 처방됐다. 심지어 독감예방주사는 일괄처방에 더해 관련 실적 또한 전혀 관여하지 않은 감염내과에서 가져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 중앙보훈병원 내 의사 A씨는 “환자 차트를 보던 중 협진처방이 난 것을 알게 됐다”며 “알아보니 적정진료실(QI실)에서 오더가 내려왔고, 간호부에서 파악해 전공의들이 오더(처방)을 낸 형식이었다. 이러다 사고라도 생기면 책임은 누가지라고 이런 일을 벌이는지 정말 아찔하다”고 한탄했다.
이어 “11월 말까지도 협진실적 달성가능성이 희박해지니 여기저기서 병원직원들 성과급 몇십만원씩 더 받게 해주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고들 해서 어떨 수 없이 협조하게 된 것 같다”며 “인센티브를 더 받기 위해 전체 병원이 조직적으로 합심해 움직였다는 생각이 든다”고 사건의 배경도 덧붙여 설명했다.
지난해 발족한 중앙보훈병원 내 의사노조 또한 사건을 인지한 후 얼마나 많은 입원환자들에게 피해가 발생했는지, 그 중 담당 전문의가 미리 알지 못한 경우는 얼마나 되는지 파악에 나섰지만 병원에서 관련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재 병원은 일괄적인 협진처방에 대한 사건이 불거지자 입을 열지 않고 있다. QI실장으로 일괄적인 협진의뢰 방식을 도입했다고 알려진 정영진 현 기획조정실장은 용건을 밝힌 후 이뤄진 연락들에 철저한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김봉석 부원장 또한 병원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답변을 회피했다.
보훈병원들의 경영성과를 평가하고 관리·감독하는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또한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단지 협진의료를 평가하는 이유가 유공자들의 진료편의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였으며, 2018년까지 꽤 높은 비중으로 포함돼 있었으나 2019년에는 비중을 좀 낮춰 ‘의료질 향상’ 범주에 포함될 것이란 사실만 밝혔을 뿐이다.
오히려 보훈병원에서의 편법적인 협진성과 부풀리기나 담당 전문의조차 인지하지 못한 처방들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지 못했으며,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아울러 이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를 산정조차 하지 않아 관련 사태에 대한 처벌이나 제재규정 또한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법 상 환자를 담당 전문의는 여러 명일 수 있고, 병동을 관리하는 전공의 또한 환자진료에 참여했다면 협진의뢰 등의 처방을 내릴 수 있다”며 “해당 사안의 경우 의료법을 위반했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관리산하 의료기관이라면) 경영평가 등을 왜곡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킨 만큼 제재를 받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