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은 후 기존에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일을 시작한 여성 비율이 65%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자녀 임신 후 비율도 46%가 넘었다.
특히 경력단절 경험 비율은 직종과 직장 유형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과 같이 일‧가정양립제도가 잘되어 있는 기관에 근무를 하던 여성은 임신‧출산 후에도 하던 일을 지속하는 경향을 보인 반면 민간 중소기업 근무자나 비정규직 여성들은 다수가 ‘경력단절’을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현상은 육아휴직 이용률에서도 극명하게 두드러졌다.
7일 이지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보건복지포럼을 통해 이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 ‘일·가정양립 실태와 정책 함의’를 공개했다. 이번 연구는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 자료 중 15~49세 기혼 여성 가운데 자녀 임신 직전에 취업해 있었던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첫째 자녀 임신 직전에 취업 중이었던 기혼 여성 5905명 중 34.2%만 둘째 자녀 임신 전까지 하던 일을 계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 당시 직종이 관리직‧전문직인 경우(39.3%), 종사상지위별로는 비임금근로자인 경우(55.8%), 직장 유형이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인 경우(73.1%)가 다른 집단에 비해 하던 일을 계속했다는 응답이 많았다. 반면 판매직인 경우(20.2%), 임시‧일용근로자인 경우(13.0%), 민간 중소기업 근무자인 경우(21.8%)는 다른 집단에 비해 ‘하던 일을 계속했다’는 응답 비율이 낮았다.
이는 관리직·전문직과 같이 경력단절이 높은 기회비용을 야기하는 경우나,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과 같이 일·가정양립제도가 잘되어 있고 이용 환경이 좋은 경우 다른 집단에 비해 하던 일을 지속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자녀수별로는 자녀가 많을수록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많았고, 자녀가 한 명인 경우에는 다른 집단에 비해 하던 일은 그만두고 다른 일을 했다는 응답이 많았다.
대부분 출산 전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상 여성 3884명을 조사한 결과, 81.3%가 임신을 알고 난 후 출산하기 전 일을 그만뒀고, 출산 후 3개월 사이에 그만둔 경우가 4.1%, 출산전후 휴가나 육아휴직이 끝났을 즈음인 출산 후 4~15개월 사이에 그만둔 경우가 9.1%였다. 출산 후 16개월 이후에 그만둔 경우는 5.2%였다.
종사상지위별로는 임시·일용근로자인 경우 93.6%가 임신을 알고 난 후 출산하기 전까지 그만두는 반면, 상용근로자는 77.4%만이 임신 후 출산 전까지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11.6%는 출산 후 4~15개월에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원은 “이 역시 상용근로자인 경우 임시·일용근로자에 비해 출산전후휴가나 육아휴직 사용이 조금 더 용이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직장 유형별로는 민간 대기업이 다른 직장 유형에 비해 임신 후 출산 전까지 그만두는 경우가 가장 적었고, 출산 후 4~15개월에 그만둔다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대기업일수록 출산전후휴가나 육아휴직 사용 비율이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
둘째 자녀 임신 직전 취업 중이었던 기혼 여성 1954명의 셋째 자녀 임신 전까지 경력단절 경험을 보면, 하던 일을 계속했다는 응답이 53.9%였다. 하던 일은 그만두고 다른 일을 했다는 응답이 23.6%,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22.5% 순으로 나타났다. 첫째 자녀와 비교해 보면 경력단절 경험이 줄어들었는데, 이는 이미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들이 상당수 빠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편 첫째 자녀 임신 직전 취업 중이었던 기혼 여성 중 비임금근로자를 제외한 5433명 가운데 40%만이 첫째 자녀에 대해 출산전후휴가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력단절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은 출산전후휴가를 사용한 비율이 88.2%로,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의 17.0%에 비해 출산전후휴가 사용 비율이 5배 이상 높았다. 이 연구원은 “이는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의 경우 일‧가정양립제도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서일 수도 있고, 회사 분위기 등 사용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일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육아휴직의 경우에는 21.4%만 육아휴직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자녀 임신 전까지 경력단절을 경험하지 않은 경우에는 48.5%가 육아휴직을 사용한 반면, 경력단절 경험 후에는 8.5%만 육아휴직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종이 사무직인 경우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 사용 비율이 각각 61.1%, 46.6%로 다른 직종에 비해 가장 높았다. 판매직은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 사용 비율이 각각 19.5%, 10.5%로 가장 낮았다. 이는 사무종사자의 경우 임금근로자 중 상용근로자 비율이 매우 높지만, 서비스나 판매종사자는 임금 근로자 중 임시·일용근로자 비율이 더 높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종사상지위별로는 임시·일용근로자의 경우 출산 전후휴가 사용 비율이 6.6%, 육아휴직 사용 비율이 1.8%로 상용근로자(각각 58.2%, 43.3%)에 비해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 사용 비율이 매 우 낮았다. 이 연구원은 “임시·일용근로자의 경우 이러한 휴가·휴직을 사용하기 열악한 지위에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특히 육아휴직은 고용보험에 많이 가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직장 유형별로는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 민간 대기업인 경우가 각각 78.7%, 72.8%로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 사용 비율이 높았고, 민간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체는 각각 41.0%, 13.2%로 사용 비율이 낮았다.
이 연구원은 “이번 연구를 통해 여성이 자녀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본인이 하던 일을 지속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며 “이는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 능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며, 국가적으로는 인적 자원의 손실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제도 등과 같은 일‧가정양립제도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엇보다 임신 당시 경제활동 특성별로 제도 이용률에 큰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근로조건이 열악하다고 볼 수 있는 직종이나 종사상지위, 직장 유형별로 일‧가정양립제도를 이용하는 데 제약 요건이 많다”며 “그에 따라 경력단절 정도에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지원 정책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