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했던, 하지만 열정적이었던 故윤한덕 선생의 마지막 외침들

순수했던, 하지만 열정적이었던 故윤한덕 선생의 마지막 외침들

기사승인 2019-02-07 18:05:31

“응급실은 응급환자가 이용하라는 곳이지만 유일하게 24시간 의료이용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고전적 개념의 응급실을 더 이상 유지하기는 어려운 현실. 이제는 방향을 결정해야할 것 같다.”

민족 대 명절 설을 맞아 가족과 고향에 가기로 약속하고 병원으로 발길을 옮겼던 故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주말 내 연락이 두절됐고, 4일 오후 6시경 센터장실에서 부인과 직원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비보가 전해지자 의료계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정관계 인사들의 애도와 조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안타까운 이가 세상을 떠났다며 고인이 평소 남긴 말들과 생각, 행동을 추억하며 그 뜻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의 말과 행동에 관심을 보일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윤 센터장은 흔히 ‘칼 같은 성격’이라고 표현하는 강직하고 단호한 일면을 가진 날카로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환자의 생명과 보건의료체계를 걱정하는 순수한 열정과 강한 책임감이 자리했던 듯하다.

실제 그와 연을 맺은 이들은 대부분 사심 없는 열정과 강직함으로 무장한 투사의 모습으로 윤 센터장을 기억했다. 단적으로 그를 기억하는 한 응급의학과 후배는 “응급의료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주관이 뚜렷했고, 타협하지 않고 직진하는 강직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윤 센터장과 함께 응급의료 관련 보건의료정책을 논의했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응급의료의 발전을 위해 항상 열정적이고 사심 없이 고민했던 이”라고 그를 추억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때론 욱하지만 그만큼 순수하게 환자와 응급의료를 위한 길을 닦아왔던 의사”라고도 했다.

심지어 아주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인 이국종 교수는 지난해 10월 발간한 ‘골든아워’에서 “임상 의사로서 응급의료를 실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일이 응급의료 전반에 대한 정책의 최후 보루라는 자의식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다”며 윤 센터장을 ‘냉소적이면서도 진정성이 있는 인물’로 표현했다.

이어 “그가 보건복지부 내에서 응급의료 일만을 전담해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정부 내에서는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윤한덕은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묵묵히 이끌어왔다”며 “수많은 장애 요소에도 평정심을 잘 유지하여 나아갔고, 관계에서의 출세에는 무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을 보고 걸어왔다”고 서술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 같은 평가는 그가 남긴 수많은 생각들에서도 단편적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고인이 1월 29일 자신의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 남긴 마지막 글은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의 문제점에 대한 고민과 비판적인 시각이 담겨있었다.

최근까지 그가 많은 관심을 가졌던 사안 또한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에 대한 과거의 잔재와 그로 인한 불법행위, 바뀌지 않는 응급의료전달체계의 문제였다. 그는 지난달 25일까지 4건의 글을 통해 응급상황과는 동떨어진 규제와 제도, 복잡하고 실효성 떨어지는 응급환자 이송체계, 열악한 근무환경과 그로 인해 유발되는 불법의료행위와 생명의 위협을 꼬집었다.

지난해 10월26일에는 ‘선한 사마이라인’이라는 제목으로 자동심장충격기(bystander AED)에 관한 대국민 인식개선에 관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매번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지만, 이것만큼은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응급의료의 열악한 현실이나 보건의료 정책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9월 “10월 2일이 공휴일이 되어 연휴가 열흘이 됐다. 응급의료는 그것만으로도 재난”이라는 글과 함께 “오늘은 몸이 세 개, 머리가 두 개였어야 했다. 내일은 몇 개가 필요할까”라는 말로 현장의 절박함을 전했다.

또, “매년 천 만 건의 응급실 방문이 있고, 향후 증가요인은 고령화뿐일 거라고 여겨왔지만 의료전달체계개편, 디지털헬스케어의 확대가 복병이 될 듯하다. 고전적 개념의 응급실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 응급실을 응급환자에게 돌려주기 위한 소극적 규제를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예약진료에서 소외된 환자의 창구로 개방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라며 결단을 촉구했다.

이 외에도 윤 센터장은 평소 그가 가진 응급의료의 올바른 방향과 환자를 위하는 신념이 담긴 많은 말들을 남겼고, 이해타산을 따지기에 앞서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정의로운 사회, 올바른 응급의료서비스와 의료기관의 자세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해왔다. 그 때문인지 대한응급의학회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그가 남긴 의지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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