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공연 앞둔 이장희 “황혼의 삶 담은 노래 쓰고 싶어”

서울 공연 앞둔 이장희 “황혼의 삶 담은 노래 쓰고 싶어”

기사승인 2019-02-13 18:27:54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 / 난 그땐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할까 (중략) 그 때도 울 수 있고 / 가슴 한 구석엔 아직 꿈이 남아있을까”

가수 이장희가 1988년 발매한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는 사실 그가 스물여덟 살이던 1974년에 쓰였다. 당시 이장희는 고려대학교 축제에서 부를 요량으로 이 곡을 썼다. “내 나이 열하고도 아홉 살에”로 시작하는 노래는 자신의 노년기에 대한 상상으로 마무리된다. 13일 서울 세종대로 19길의 한식당에서 만난 이장희는 “이 노래를 작곡했을 땐 예순이 되는 게 먼~ 훗날의 일일 줄 알았는데, 벌써 내가 일흔이 넘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장희는 다음달 8~9일 양일간 서울 논현로에 있는 LG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을 연다. 공연 타이틀은 그의 히트곡 제목에서 발췌한 ‘나 그대에게’. 이장희는 “공연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의 50년 지기 음악동료인 기타리스트 강근식과 베이시스트 조원익도 공연에 힘을 보탠다. 이장희는 “1970년대의 정서를 담은 음악을 연주할 것”이라면서 “5~70대가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장희는 가수 조영남, 윤형주, 김세환 등 쎄씨봉 멤버들과 함께 1970년대를 풍미한 포크 가수로 꼽힌다. 트로트가 유행하던 1970년대 미국 팝을 접목한 음악으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71년 데뷔해 1975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돼 은퇴할 때까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그건 너’ ‘불 꺼진 창’ 등 숱한 히트곡을 남겼다. 

“나보고 우리나라 가요에 처음 구어체를 도입한 사람이래요. 예전에 들었던 우리나라 음악은 시어체가 많았는데, 제가 미군 방송에서 들은 팝 음악을 보면 ‘헤이’(Hey) ‘굿 루킹’(Good Looking)처럼 평소에 하는 말을 가사에도 쓰더군요. 그게 훨씬 리얼하게 느껴져서 ‘나도 해봐야겠다. 남들이 안 쓰는 단어, 어투, 생각을 (가사에) 써보자’고 했죠.” 

가요계를 떠난 이장희는 사업가가 됐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다가 198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가 레스토랑을 차렸다. 1988년엔 라디오코리아를 설립해 2003년까지 운영했다. 이듬해 귀국한 그는 울릉도에 터전을 마련했다. 울릉도에서 여생을 보내는 건 그의 오랜 꿈이었다고 한다. 1996년 우연히 울릉도를 방문한 뒤 그곳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지난해엔 새로 개관한 ‘울릉천국 아트센터’에서 장기 공연을 펼쳤다. 주로 관광객들이 객석을 메웠다. 강근식과 조원익은 이 때도 이장희와 함께 했다. 이장희는 두 친구를 “음악과 술로 맺어진 우정”이라고 말했다. “음악은 말이 필요 없는 정서적 교류에요. 그리고 우리 세 명 전부 술을 좋아하거든요. 하하하.”

오랜 시간 음악을 떠나 있었던 이장희는 다시 무대에 오르면서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고 한다. 스스로가 어쭙잖게 느껴지다가도 음악에만 몰두했던 젊은 시절의 열정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이장희는 “강근식, 조원익과 공연하는 게 재밌다”며 “할 수 있는 데까지 (공연을) 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내 나이가 일흔이 넘었어요. 인생의 황혼 아니겠습니까. (황혼은) 어떻게 보면 붉게 타서 아름답지만 쓸쓸한 것도 사실입니다. 안온한 느낌을 받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공허한 느낌도 받아요. 이런 복잡다단한 마음을 노래로 부르면 좋겠습니다. 옛날엔 내 주특기가 뭔가에 착상해서 노래로 써 부르는 거였는데, 지금은 왜 그걸 못하는지…. 요즘엔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게 꿈인데 현실이 될 진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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