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를 맞았다. 각계각층이 참여했던 일제강점기 최대 항일운동이 재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차별과 부당한 대우에도 굴하지 않고 일본에 투쟁했던 의학도들의 활약상이 눈에 띈다. 특히 일제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았을 것이라고 인식되던 관립전문학교이자 서울대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의학전문학교(이하 경성의전)’ 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25일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이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임상 제2강의실에서 개최한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의학도, 3‧1 운동의 선두에 서다’에서는 당시 의학도들의 활동들을 되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김상태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 교수에 따르면 1919년 3월 1일 종교계 대표들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할 때 학생들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동시에 시민들과 함께 종로, 덕수궁 앞 등 도심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3월 5일에는 학생들이 독자적으로 제2차 시위운동을 전개했다.
일본 헌병과 경찰의 시위 진압으로 3.1운동에 참여했던 학생 상당수가 재판에 회부됐고, 210명(학생 164명) 중 경성의전 학생이 3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은 출판법 위반, 보안법 위반 등으로 최대 18개월까지 옥고를 치렀다.
경성의전 학생들이 항일운동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일본인 학생들과의 차별 때문이었다. 이는 경성의전 설립 초부터 이어졌다. 식민지 의학을 주도한 후지타 쓰구아키라는 경성의전 시초인 대한의원부속의학교를 조선총독부의원 부속의학강습소로 강등시켜 위상을 떨어뜨렸다. 또 조선인 학생들에게 ‘거만하다’는 이유로 각모 대신 환모를 쓰게 했으며, 한글로 된 교재를 소각해 일본어로만 교육을 하도록 했다. 조선인 교수 전원을 폐관시키기도 했다.
이에 1916년 경성의전 개교 당시 의학강습소에서 편입한 (당시 3학년) 이배식, 김형익, 양진홍 등은 환모를 각모로 바꿔 달라고 진정서를 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학생들은 1주일간 동맹휴학을 하기도 했다.
차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일본인에게는 독일어, 해부학, 조직학 수업 시간을 늘리고, 조선인에게는 기초적인 일본어, 수학, 물리학 수업 시간을 늘려 학습에 차이를 뒀다.
최규진 인하대 의과대학 인문의학 교수는 “3‧1운동의 학생 참여는 우발적인 것이 아닌 여러 차례의 사전 준비를 통해 조직된 거사였다”며 “1, 2월에 진행된 학생들의 사전모의에 경성의전 4학년생 김형기와 2학년생 한위건이 학교 대표로 참여했고, 여기에 나창헌이 주축이 되어 일본인 학생과 분리되는 일본어 수업시간 등을 이용해 시위 참가를 조직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한 일본인 교수의 망언에도 맞섰다. ‘구보 망언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1921년 5월 해부학교실에 비치된 두개골 표본이 분실된 데서 시작됐다. 구보 교수가 “조선인은 해부학상으로 야만에 가까울 뿐 아니라 지난 역사를 보더라도 너희들이 가져간 것”이라고 단정하자 194명의 조선인 학생 전원은 구보 교수의 수업을 거부하고, 응당한 조처가 취해지지 않으면 동맹휴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학교 측은 주동자 9명을 퇴학시키고, 나머지 185명에게는 무기정학을 내리며 대응에 나섰다.
학교는 물론 총독의 협박, 경찰의 주동자 심문, 교우회와 학부모회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자퇴서를 제출하며 맞섰고, 구보 교수의 사과를 받은 후 한 달 만에 동맹휴교를 풀었다.
이같은 크고 작은 투쟁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학생 위주로 학교가 운영되자 경성의전 학생들은 3‧1운동 이후 최대의 항일시위로 꼽히는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운동은 1929년 말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되며 1930년 5월까지 지속됐다.
신찬수 서울대 의과대학장은 이날 자리에서 “올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의학 교육기관이자 서울대 의과대학의 출발인 의학교가 설립된 지 120주년을 맞는 해이다”라며 “일제 강점기 때 민족적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 했던 선배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 의학은 초라했을 것이다. 후학들이 선학들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함으로써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은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의학도의 활약상은 눈부셨다. 경성의전 학생들은 서울 만세시위에 적극 참가했고, 3‧1운동 확산에도 크게 기여했다”며 “후학들이 선배 의학도의 용기와 지혜, 교훈을 얻어서 민족의 앞날을 건강하게 열어갈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