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성의식을 가졌다면 이를 방관하지 않았을 텐데” 밴드 씨엔블루 멤버 이종현은 과거 가수 정준영이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받아본 뒤 피해 여성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며 이렇게 사과했다.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는 “이종현은 본인의 잘못된 성도덕과 가치관에 따른 대중의 지적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깊은 후회와 자책을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그 진정성을 믿는 이는 많지 않다.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정준영과 오래전 연락을 하고 지낸 사이였을 뿐 이번 사건과는 무관”하다며 발뺌하던 모습을 기억해서다. FNC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이렇다. ‘제대로 된 반성을 했다면 이를 부인하지 않았을 텐데.’
이른바 ‘정준영 카톡방’ 파문이 끝을 모르게 이어지고 있다. 동영상을 공유 받았다며 사과한 가수 용준형과 이종현 외에도 가수 로이킴이 영상이 오고 간 카카오톡 대화방에 함께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미국 워싱턴DC 조지타운대학에서 수학 중인 그는 소속사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귀국해 조사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4년 전 정준영과 함께 JTBC ‘히트메이커’에 출연했던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강인, 가수 정진운, 모델 이철우도 불법 동영상을 전달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철우 쪽이 “문제가 되고 있는 단톡방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한 반면, 강인 측은 “일시적으로 출연자 대화방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대화가 오고갔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진운 측도 즉답을 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정준영이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대화방은 모두 23개이고 참여자는 16명으로 파악됐다. 이들 중 동영상을 직접 촬영하거나 유포해 입건된 사람은 7명이다. 경찰은 참고인 조사 결과에 따라 더 많은 관련자들이 입건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불법촬영 영상을 보기만 한 경우는 현행법상 처벌하기 어렵다. ‘동영상을 본 것만으로도 2차 가해’라며 분노하는 여론과는 온도차가 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촬영물을 이용한 사이버성폭력이 더 이상 ‘남성문화’의 일부가 되지 않으려면 비동의 촬영과 유포를 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유포된 영상을 공유하거나 시청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목소리가 남성사회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준영 카톡방’은 어디에나 있다. 동영상을 유포한 정준영도, 이를 받아본 용준형·이종현·로이킴도 우리 사회 어디에나 있다. 로이킴이 참고인 조사 대상에 올랐다는 보도가 나온 뒤, “감기 몸살이 심했는데 (여대에 오니) 음기가 좋긴 하다”, “남자 중학교를 다녀서 여자에 대해 너무 궁핍했다” 등 로이킴의 과거 발언을 재조명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대부분이 클릭을 유도하기 위한 어뷰징 기사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여성을 대상화하는 발언이 얼마나 일상적이었으며, 미디어가 이를 얼마나 가볍게 소비했는지에 대한 꾸짖음으로 읽어내야 한다. 연예계에서 ‘나쁜 놈’을 골라내 처단하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근본적인 인식이 변하지 않으면, ‘정준영 카톡’ 파문은 언제든 다시 일렁일 수 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