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지역주민의 일상복귀를 위해 6평형 이동식 주택 1차 지원–
-배우 권오중 씨를 비롯 자원봉사자들 팔 걷어 붙여-
-산불 피해 지역 빠른 복구 위해 후원 동참 절실-
-새로운 보금자리서 희망의 싹 틔워-
지난 4일 저녁 7시 30분. 여느 때처럼 가족은 식탁에 둘러 앉아 단란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창밖이 밝아오면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가장인 이격호(42) 씨는 불길한 느낌에 문을 열고 나서자 이미 앞산에는 붉은 화마가 하늘로 치솟고 뒤를 돌아보자 뒷산도 시뻘건 불덩어리들이 집을 덮칠 태세다. 이 씨는 정신없이 태어난 지 3주밖에 안 된 막내딸을 들쳐 업고 나머지 두 아이와 8순을 앞둔 노부모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집을 탈출했다.
2대의 차에 나눠 타고 큰길로 나서는데 뜨거운 열기와 함께 차 위로 불덩어리들이 춤을추며 날라 다녔다. 주변이 모두 활활 타오르는 지옥같은 불구덩이를 겨우 빠져나왔다. 이 씨의 집은 이번 산불의 발원지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원암교회 전도사인 이격호(42)씨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것도 챙겨나오지 못 했습니다. 몸만 빠져 나온 것도 큰 다행입니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사이에 이렇게 큰불이 났다면 어찌했을까, 상상하기도 싫다.”고 전하면서 “지금은 막 농사를 시작하는 철이어서 피해주민들을 위해 당국에서 가능한 신속히 조사를 마치고 보상 문제도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화마가 지나 간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주변에는 매캐한 연기가 주민들의 폐부를 자극한다. 화재로 모든 것이 불타버린 원암교회 사택 내부를 둘러보았다. 탈출당시의 긴박함을 보여주듯 식탁 위에는 식기와 반찬, 밥덩어리가 그대로 검정을 뒤집어쓰고 있다. 안방 침대 머리 위에는 연기에 그을린 가족사진이 덩그러니 걸려있다. 갓난아기 방에는 깨진 유리 조각들 사이로 봉제인형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뒹굴고... 입던 옷이며, 가재도구 어느 것 하나 사용 가능한 것은 없어 보였다. 무서운 화마는 행복했던 가족의 지난 시간까지도 모두 불태우고 말았다.
이격호 씨는 “산불 피해가 아직 집계되지 않아 집을 철거할 수도 가재도구를 정리할 수도 없다”며 “그나마 가족이 대피소에 있다가 어제 콘도를 배정 받아 갓난아기와 함께 한집에서 살게 되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바로 이웃에 살면서 팬션을 운영했던 전유순(70) 씨는 “너무 머리가 아프고 지금도 정신이 하나 없다. 모든 게 불안하고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며 “전 재산을 투자해 팬션을 운영해 생계를 꾸렸는데 집이 전소했다. 한 푼 수입 없이 어떻게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피해조사가 끝나지 않아 복구는 엄두도 못 내고 있는 강원도 산불현장. 12일 아침, 기자가 찾은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현장에는 5톤 트럭에 실려 천안에서 밤새 달려온 한국해비타트의 긴급 구호물자인 이동식 목조주택 2동이 도착해 있었다.
지난 4일 발생한 산불로 강원도 지역에는 500채 이상의 가옥이 훼손된 것으로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추정하고 있다. 피해주민들이 하루 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주거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해비타트는 지난 25년간 국·내외 재난피해지역에 주거지원을 통한 피해가정의 자립을 도와온 경험을 토대로 단계별 재난대응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한국해비타트는 이날 이동식 주택 설치를 시작으로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대한 지원을 점차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지자체 협의와 후원사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이어지는 모금 상황에 따라 재난대응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이번에 보급되는 이동식 주택은 한국해비타트가 지원하는 24평형 일반 목조주택을 6평으로 축소 설계한 구조이며, 한국해비타트 목조건축학교 50기에서 제작한 이동식 목조주택이다. 해비타트 목조건축학교는 현재 50기까지 약 6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명실상부한 목조 건축 전문가 양성기관이다.
이날 오후 10여 명의 건축전문가와 인근 교회 목사,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설치작업을 마친 주택은 전기와 정화조, 상수도 연결 등 나머지 작업이 마무리되는 오는 22일부터 입주해 생활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동식 주택 설치 작업에 참여한 한국해비타트 홍보대사 배우 권오중 씨는 “갑자기 큰일을 당한 이웃을 위해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한숨에 왔다.”며 “피해 주민들이 속히 일상으로 복귀해 정상적인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형주 한국해비타트 이사장은 “한국해비타트는 강원도 고성을 시작으로 이번 산불피해 지역 주민들의 보금자리 재건을 돕기로 했다.”며 “무엇보다도 주택 복구가 시급한 가정을 중심으로 재난대응 사업을 펼쳐 나갈 예정이며, 산불 피해 지역 주민들이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참여를 부탁드린다.”며 후원에 동참을 부탁했다.
강원도 고성=글·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사진=곽경근 대기자/ 왕고섶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