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국민영웅으로 떠오른 박항서 축구감독의 성공요인에 관한 여러 분석 가운데 그의 뛰어난 용병술이 늘 1순위로 꼽힌다. 선수 선발이나 기용에서 사적인 감정이나 외부의 입김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경기력에만 집중하는 그의 용병술을 두고 베트남 언론들이 ‘박항서 매직’이라고 환호할 정도다.
현 정부의 국정에 대한 평가가 갈수록 나빠지는 저변에는 인재등용의 실패가 깔려 있다. 단골로 비판 받는 현 정부의 경제실정도 알고 보면 잘못된 인사에 기인한다. 최근 이뤄진 내각 개편만 봐도 그렇다. 7명의 장관 후보자 가운데 다수가 흠결투성이였다. 그 결과 2명은 일찌감치 낙마하고 2명은 국회의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이 강행됐다. 출범 2년도 안된 상태서 임명 강행 사례가 벌써 11건이나 됐다. 그러다 보니 인사 난맥상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 현 정부와 유사한, 아니 현 정부보다 더 심한 인사 난맥상을 보이는 곳이 있다. 이번 민선 7기 들어 경기도 고양시에서 진행된 일련의 인사가 지극히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것이다. 특히 몇몇 정무직과 고위직 공무원 인사에서는 석연찮은 느낌을 주고 있다.
먼저 정무직 임명을 보자. 하나같이 자격과 자질에서 의문을 가질 만한 인사다. 누가 봐도 자리에 적합한 인물을 골랐다고 보기 어려우며,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의혹을 가질 만한 구석이 있다.
처음 임명된 5급 상당의 비서실장의 경우, 2011년 공모로 고양시 노무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7급 계약직으로 들어와 연장계약을 통해 5년을 채운 뒤 2016년 다시 6급으로 채용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자 고양시 공직자들은 큰 이변으로 받아들였다. 더구나 그는 이전 한 호텔 근무 시절 성추문 의혹까지 받던 터였다. 결국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다음 이뤄진 대외협력보좌관 채용은 그 이상으로 파격적이고 비상식적이었다. 베일에 가려진 경력의 그가 고양시 최초 3급 상당의 전문임기제 공직자로 깜짝 발탁되자 한바탕 거센 논란이 일어났다. 시민과 언론은 물론 공직자들까지 이해할 수 없는 인사라며 비판했다. 시의회에서도 그의 임용자격 문제와 관련해 감사원 감사청구를 하고 조사특위 구성 결의까지 했다.
신임 보좌관에 대해 고양시의 대외업무를 총괄하면서 시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여론이 대세였다. 또한 외부 영향력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무성했다. 기자는 그때 ‘물러남에도 타이밍이 있다’(쿠키뉴스 2018년 11월 5일자)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당사자에게 정중히 자진사퇴를 권유했다.
그런데 진정 믿기 어려운 인사가 지난달 나왔다. 고양시의 공공자전거 운영회사인 ㈜에코바이크 새 사장으로 전임시장의 비서 출신 인사가 선임된 것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내정단계서부터 각계의 비난과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벌집 쑤신 듯하다’는 표현이 나왔을 정도다.
그래서 대부분 공직자와 시민들은 임명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보란 듯이 그에게 임명장이 주어졌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이재준 시장이 뭔가에 단단히 코가 꿰었다’는 말이 나왔다. 너도나도 앞의 두 인사에서 품었던 의혹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준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부 고양시 고위공직자 인사도 상당히 미심쩍었다. 몇몇 보직 및 승진인사에서 외부의 영향력이 작용한 듯했던 것이다. 당시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이 시장이 전임시장 때 실세였던 인물들을 내치는 시늉을 하다 되레 챙기고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자, 이쯤에서 이 시장이 왜 이렇게 이런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인사를 해왔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왜 수많이 사람들의 의심을 살 만한 무리수를 둬야 했는지 톺아볼 필요가 있다.
이 대목에서 기자는 지난해 지방선거에 앞서 이뤄진 더불어민주당 고양시장 후보경선 막판에 썼던 ‘꼼수 그리고 묘수(妙手)와 악수(惡手)’(5월 8일자)라는 제목의 칼럼을 떠올린다. 컷오프에 걸린 전임시장의 선거캠프를 전격 접수한 당시 이 후보가 시장 당선 뒤 혹여 그 일에 발목을 잡힐까 우려하며 썼던 글이다.
또 있다. 무난히 당선된 이 시장에게 편지 형식의 글을 쓴 적도 있다. ‘소신 있는 시장, 실용적인 시장이 되시길 바랍니다’(6월 28일자)라는 제목의 이 글은 당시 시장직인수위원회 위원 면면을 보고 다시 한 번 외부 영향에 휘둘릴까 걱정하는 심정을 담아서 썼다.
다시 박항서 감독 이야기를 잠깐 해 보자. 박 감독은 지난해 12월 아세안컵축구대회서 베트남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끈 뒤 개인상금 10만 달러를 받자마자 베트남 축구계에 내놨다. 그냥 챙기더라도 어느 누구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돈을 그는 기꺼이 희사했다. 사욕을 멀리하려는 귀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시장은 어떤가. 최근 고양시가 이 시장 관사 임대를 위한 5억4000여만 원의 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가 주위의 엄청난 반발에 부닥쳐 철회하는 해프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이 시장 입장에서 억울한 구석이 있을지 모르지만, 시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시장의 임기는 이제 막 10개월째에 들었다. 앞으로 갈 길이 훨씬 많이 남았다. 그런 그가 계속 이런 식으로 ‘마이 웨이’를 고집하다가는 그의 시정은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럴 경우 이 시장 본인은 물론 고양시민들에게 큰 불행이다.
그래서 이 시장에게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한다. 현 상황을 깊이 그리고 냉정히 살피고 새롭게 자신을 추슬러 달라고 말이다. 이는 고양시민들이 던지는 준엄한 명령이기도 하다. 기자는 지금까지 수차례에 걸쳐 오직 고양시와 시민만을 바라보고 시정을 펼쳐달라는 부탁을 했다. 지난해 썼던 칼럼 ‘꼼수 그리고 묘수와 악수’ 가운데 한 구절을 되새긴다.
“많은 고양시민들은 지금 이 후보와 최 시장 측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았을까 의심하며 걱정하고 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시장의 시정은 잘못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정수익 기자 sagu@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