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술도 사람과 같이 생로병사가 있습니다. 새로운 의료기술은 시장에서 사용되면서 성숙기를 거치고 쇠퇴기를 걷습니다. 당연한 순서인데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노쇠한 행위들이 존재합니다. 바늘로 귀를 찔러서 피가 언제까지 묻어나오는지 확인하는 고통스러운 응고검사가 아직도 급여 목록에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불필요한 의료 지출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 다트머스 건강정책 및 임상진료 연구소는 최근 미국 건강보험 재정 지출의 30%가 낭비적 요소라고 밝힌 바 있으며, 2010년 미국국립의학연구소(IOM) 보고에서도 2.5조 달러의 의료비 중 약 31%에서 낭비적 지출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에서는 불필요한 엑스레이, 약물 및 치료제를 너무 많이 사용하면서 연간 약 20억 파운드를 낭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의료기술 재평가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엄태현 일산백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그중에서도 빠른 의료기술 발달로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의료자원을 재평가해 재정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기술평가(HTA)란 약제, 의료기기, 의료행위 등 의료기술의 효과, 영향력을 분석해 ‘보편적 진료환경’에서 사용될 수 있을지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기술의 개발 단계부터 허가와 승인, 건강보험 급여화 및 이후 지속사용, 퇴출까지 전 단계에서 수행된다.
엄태현 교수는 2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개원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미국에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 행위를 재평가 해 급여 목록에서 제외시키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런 제도가 아직 없는데, 5000여개의 의료기술 중에는 필요 없는 행위들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급여가 되는 검체검사 중 효용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예로 응고검사, 간기능검사 등이 있다. 응고검사는 출혈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방법이다. 옛날엔 많이 했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많이 나와서 하지 않는다”며 “간기능검사 중 하나인 브롬설파레인(BSP), 티몰혼탁시험(TTT, thymol turbidity test)은 1920년대, 1940년대에 개발됐고 원리도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엄 교수는 “B형간염검사 중에는 일반면역검사와 정밀면역검사가 있는데, 대부분 정밀검사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면역검사를 급여 항목에 살리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같은 검사인데 누구는 정밀검사, 누구는 그보다 떨어지는 검사를 하는 것”이라며 “급여 중단이 이뤄지는 것에 있어서 사회적 여파가 발생할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그 재원을 가지고 다른 곳에 쓸 수 있다. 의료기술을 재평가 해 정리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기술 재평가는 곧 의료 보장성과도 연관되기 때문에 현재 미국과 호주, 캐나다 등에서는 불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줄임으로써 의료자원의 낭비를 막고, 의료의 질은 높이는 ‘현명하게 선택하기(Choosing Wisely)’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근거가 부족한 의료기술 사용, 질 낮은 의료서비스 등을 줄이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시행에 따른 재정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형 Choosing Wisely’가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건강보험 보장률이 최근 10년간 60%대로 변화가 거의 없고, OECD 평균인 7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해민 국민건강보험공단 급여보장실장은 “의료기술평가는 기술의 개발단계에서부터 재평가까지 전 주기에 걸쳐 이뤄지게 되나, 제도적으로 건강보험에서 평가는 급여결정 이전에 기술의 안전성, 유효성 검증을 위한 ‘신의료기술평가’만 활용되고 있다”며 “그러나 급여 진입 이후 의료기술의 수용과 확산에 대한 효과적 관리를 위해 기존 기술에 대한 체계적인 재평가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해만 실장은 “이번 보장성 확대계획에 따라 보편적 의료보장이 이뤄지면서 나타날 수 있는 의료 오‧남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의료자원의 낭비를 막는 Choosing Wisely 캠페인이 우리나라에서도 정착될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