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중증정신질환 관련 사건사고에 국민들의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정신질환에 대한 공포와 혐오도 짙어지는 모양새다.
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학교 옆 정신질환자 수용소 설립을 철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나왔다. 정신의료기관을 ‘정신질환자 수용소’로 표현한 것이 눈길을 끈다.
지난 1일 올라온 해당 청원은 게시된 지 일주일 만에 880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앞서 지난달 26일 정신장애인단체 등이 지역기반 정신응급의료 시스템 구축을 요구하며 올린 ‘진주사건, 막을 수 있었다’ 청원(약 2000여명 참여)보다 서명자 수가 4배가량 높다.
경기도 오산시에 거주한다고 밝힌 청원자는 “학교에서 고작 200m 떨어진 곳에서 폐쇄 정신병동이 설립된다. 조현병 환자, 성범죄자, 관리대상자 등 다른 기관에서 수용 불가한 고위험군 환자들을 수용할 예정”이라며 “맞은 편 아파트에서 쇠창살 등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인데, 주민들의 불안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청원자는 “정신병동이 법적으로 혐오시설로 구분되어 있지 않지만, 최근 진주시에서 발생한 조현병 환자 살인사건만 보더라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통념상 충분히 혐오시설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하는 폐쇄 병동은 더더욱 그러하다”며 “초등학교서 200m거리는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시키기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수치”라며 불안을 호소했다.
故임세원 교수 피살 사건에 이어 진주 살인·방화사건, 그리고 부산 친누나 살해 사건 등 중증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지역사회가 얼어붙고 있다. 최근 발생한 강력범죄와 이에 대한 국가기관의 부실한 대처가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키운 셈이다.
싸늘한 시선과 책임은 고스란히 정신질환자 가족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결국 가족이 환자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따가운 시선 속에 환자들은 병원 대신 '집 안'에 고립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이른바 '탈원화 정책'이라 불리는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됐지만, 병원에서 나온 환자들을 관리할 지역사회 재활 시스템 등 제도적 지원은 여전히 미비하다.
조순득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장은 “요즘 같은 때는 연일 심정이 미어진다. 진주사태 이후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악화되는 상황에서 정신질환자 가족들은 숨고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병원에 대한 반대는 익숙하다. 부산에 있는 모범적인 정신병원도 지역주민들이 앞장서서 반대한다”며 “사실 대다수 정신질환자들은 위험하지 않다. 극소수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고, 치료 잘 받는 환자들은 남을 해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정신질환 관련 정책에도 쓴 소리했다. “탈원화를 시행하면서 강제입원 환자들이 병원 밖을 나왔지만, 정작 지역사회에는 환자들이 갈 곳이 없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거나 가족에게 맡겨지거나 아니면 길가에 나앉는다. 조기에 치료를 받고 사회에서 재활을 받아 어울려 살 수 있게 해야 하는데, 방치하고 만성 환자로 만들어 버린 데에는 국가도 책임도 있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실제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높지 않다. 2017년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정신질환자 가운데 범죄를 저지른 비율은 0.136%이다. 같은 기간에 발생한 전체 인구의 범죄율(3.93%)이 28.9배 높다. 다만, 정신질환 급성기 상태에서 집중치료가 적기에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자·타해 위험이 나타날 수 있다.
이와 관련 정신의료계는 ‘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요구하고 있다. 자·타해 위험이 있는 급성기 환자에 대한 응급개입체계를 구축하고, 지역사회에서 꾸준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가동할 컨트롤 타워 설치하고, 현행 전체보건예산의 1.5%인 정신보건예산을 5% 수준으로 확대하는 등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정신병원 입원을 어렵게 만든 정신건강복지법도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국민들의 편견과 불안을 없애려면 정신질환 사건사고를 막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법체계와 시스템은 사고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급성기 환자를 빨리 치료하지 못하니 사고가 터지고, 국민들은 정신질환자를 나쁘게 보는 악순환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초기 급성기 환자는 빠르게 치료에 개입하고, 만성기 환자들은 퇴원시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인프라 조성이 시급하다”며 “정신질환은 특별한 사람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걸릴 수 있는 병이다. 치료환경을 제대로 마련한다면 강력 사건은 충분히 없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