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동반자살’ 용어 사용을 지양하고 비속살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일 오전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안방에서 아버지 A(51)씨, 어머니 B(48)씨, 고등학생 딸 C(19)양이 숨져있던 현장을 최초로 발견한 건 중학생 아들 D(15)군으로 알려졌다. 부검 결과와 주변 진술 등을 토대로 경찰은 생활고를 겪은 아내와 딸을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앞서 지난 7일에는 부산에서 생활고 때문에 장애가 있는 아들을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50대 남성이 경찰에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됐다.
안타까운 참변 이후 부모가 자식의 생사를 마음대로 결정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의정부 일가족 사건’에서 C양의 경우 자신의 의지에 반해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C양 부검 결과, 흉기를 막으려 할 때 생기는 ‘방어흔’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또 전문가들은 아버지가 아들 D군만 살려놓은 이유를 ‘대가 끊기면 안된다’는 가부장적 선택으로 보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동반자살’ 용어 자체가 굉장히 잔혹한 용어”라며 “딸도 타인인데 그 사람의 생명권을 아버지가 좌지우지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부모에게는 자식의 생명권을 선택할 권한이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2014년 서울지방경찰청 정성국 박사 등이 발표한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2013년 3월까지 발생한 전국 비속살해 건수는 모두 230건으로 매달 평균 2.64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연령은 9세 이하가 59.1%, 10대가 27.9% 였다. 비속살해 비율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부모의 자녀 양육기간이 길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소유몰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유력하다. 부모가 자신 없이는 자녀가 사회를 헤쳐나갈 수 없다는 책임 의식때문에 자신이 숨을 거두기 전 자식의 목숨을 먼저 끊는 사건들이 반복된다는 분석이다.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비속살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형법상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 살해만 가중처벌하고 있다. 살인죄의 형량은 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이다. 비속살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존속살해만 사형∙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 징역으로 더 무겁게 처벌한다.
비속살해보다 존속살해를 더 중한 범죄로 보는 것은 ‘효’를 강조하는 유교사상 영향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2013년 헌법재판소는 존속살해를 가중처벌하는 형법 제 250조 제2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며 “우리사회에는 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관념 내지 전통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며 “존속살해는 패륜성에 비춰 일반 살인죄에 비해 고도의 사회적 비난을 받을 이유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는 비속살해죄의 형량을 높이자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계류 중이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2017년 3월 직계비속을 살해한 행위도 직계존속을 살해한 행위와 마찬가지로 비도덕적인 패륜범죄이며,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형법일부개정안 법률안을 발의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