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료현장에서 '명상'을 치료에 접목하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 몸과 마음의 연결고리를 살피는 일이 치유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 의료인들이 환자의 마음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명상은 어떤 효과가 있을까. 채정호 대한명상의학회장(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마음과 생각은 진짜가 아니거든요. 괴로운 마음에서 벗어나 실재(實在)를 확인하는 일이 바로 명상입니다. 나를 사로잡고 있는 생각을 잠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채 교수는 트라우마 전문가다. 세월호, 메르스 등 각종 재해나 재난 피해자들의 정신건강을 다루다보니 자연히 ‘명상’에 관심이 옮겨갔다고. 명상은 마음의 괴로움을 떨쳐내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마음의 괴로움이 몸의 증상으로 발현되기도 하고, 반대로 몸의 통증이 마음을 괴롭히기도 한다. 의료인들이 마음에 주목하는 이유다.
흔히 명상이라고 하면 종교적인 수행법으로 인식된다. 의사들이 명상을 한다고 하니 의심의 눈초리도 적지 않다. 채 교수는 “명상에 대한 편견이 많다. 그러나 명상은 인류와 함께 발전해온 정신적 전통이고, 모든 종교와 문화에는 명상적 요소가 녹아있다. 학회는 명상적 기법을 차용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방법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초월적인 것이나 자기 안으로 빠져 들어가는 명상이 아니라 현재에 발을 딛고 내면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명상, 실제 환자들에게 현실에서 도움이 되는 방향을 지향한다”며 “명상은 환자가 직접 해야만 효과가 있고, 개인마다 편차가 있다는 한계가 있다. 표준화가 어렵지만 좋은 진료보조도구 중 하나다”라고 덧붙였다. 정신과뿐만 아니라 가정의학과, 내과 등 다양한 진료과 의료진들이 대한명상의학회에 참여하고 있다.
채 교수는 현대사회를 ‘명상이 사라진 시대’라고 진단했다. 무한경쟁과 갑질이 난무하는 어느 때보다 스트레스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마음을 챙기는 일에는 소홀하다는 것이다. 그는 “과도한 경쟁 속에서 살다보니 남과 비교하게 되고, 화낼 일도 는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패러다임 속에서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치닫는 것”이라며 “많은 정신질환이 과도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생각의 집착에서 나오는 방법이 명상이고, 모든 현대인에게 필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커피의 향과 맛, 발끝의 꼼지락거림, 엉덩이가 의자에 닿는 느낌 등 일상의 모든 감각이 명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채 교수는 “명상은 내 마음을 내가 원하는 곳에 두는 훈련이다. 생각을 멈추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의 존재를 알아채는 일”이라며 “감각이나 움직임에 집중하면 누구나 쉽게 명상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괴로운 마음을 왼발바닥에 둘 수 있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감각에 집중하면서 지금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명상이 된다. 설거지도 좋은 방법이다. 손에 닿는 물과 접시의 느낌. 물소리에 마음을 두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흔히 ‘명상’하면 떠올리는 부동자세보다는 감각이나 움직임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쉽고 효과가 좋다. 채 교수는 “고요한 상태의 명상도 있지만 힘들 때에는 몸으로 하는 명상을 권한다. 손이나 발바닥, 엉덩이뼈 등 감각에 집중하거나 천천히 움직이는 자신의 몸을 인식해보는 것이다. 또 평소에 좋아하는 음악이나 아름다운 사진을 휴대폰에 저장해놓고, 좋아하는 촉감의 천을 주머니에 넣어두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신을 위안하는 방법도 추천한다”고 조언했다.
명상을 할 때에는 반드시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채 교수는 “내 마음을 원하는 곳에 보냈다가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도사가 되어 득도의 길을 걷자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스트레스를 해결하고 다시 힘차게 살아가기 위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책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의 한 구절이다. 불우한 환경에 처한 한 소년에게 나타난 마술가게 주인이 꿈을 이루는 방법을 소개하는 장면이다. 마음 다스리기는 삶을 바꾸는 일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제 발끝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고 발끝의 긴장을 풀자. 다음, 근육을 이완하면서 발에 초점을 맞추자. 호흡을 내쉬면서, 마치 두 발이 거의 녹아 없어지는 상상을 해보자. 산만해지거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집중력이 떨어질 경우 발끝과 발의 근육을 이완하면서 그냥 다시 시작하면 된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