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더' 엄마 로봇 vs 낯선 인간… 누구를 믿을 것인가 [넷플릭스 도장깨기⑩]

'나의 마더' 엄마 로봇 vs 낯선 인간… 누구를 믿을 것인가 [넷플릭스 도장깨기⑩]

'나의 마더' 엄마 로봇 vs 낯선 인간… 누구를 믿을 것인가

기사승인 2019-06-22 07:00:00


인류가 멸망했다. 그러자 누군가 만들어놓은 인류 재건 시설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돌고 있는 바깥세상과 완전히 차단된 거대한 공간이다. ‘엄마’ 로봇(로즈 번)이 그곳을 지킨다. 그는 그곳에 저장된 인간배아 6만3000개 중 하나를 꺼내 갓난아이로 만든다. 음악을 틀어줘 태어난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고 분유를 먹이고 직접 교육까지 한다.

그로부터 13867일, 약 38년이 흘렀다. ‘엄마’는 여전히 10대인 딸(클라라 루고르)과 생활하고 있다. 어느 날 밤 시설에 원인 모를 정전이 발생하자 원인을 찾아 나선 딸은 살아있는 쥐를 발견한다. 딸은 어떤 생명체도 살지 않는다고 믿었던 바깥세상이 어쩌면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희망에 부푼다. 하지만 ‘엄마’는 위험하다며 가차 없이 쥐를 소각한다. 딸은 바깥이 위험하다는 ‘엄마’의 말이 어쩌면 틀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얼마 후 딸은 바깥에서 생존한 낯선 여성(힐러리 스웽크)을 만나게 되고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나의 마더'는 제목부터 독특하다. 원제는 ‘아이 엠 마더’(I Am Mother)를 ‘나의 엄마’, 혹은 ‘마이 마더’ 대신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한 지금의 제목으로 바꿨다. 기존에 통용되는 지칭 대명사 ‘엄마’가 영화 속에선 ‘마더’라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되는 점을 강조한 것. 오직 둘 뿐인 세계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나의 마더’는 종말 이후의 SF 세계관을 빌려 ‘엄마’의 의미를 묻는다. 내가 태어난 것과 관련이 없고 외모와 정서 등 모든 것이 다르지만 나를 길러주고 보호해준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은 적지만 한 눈에 나와 같은 종류라는 걸 알 수 있는 엄마 사이에서 딸은 갈등을 거듭한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입양된 10대 소녀에게 길러준 엄마와 낳아준 엄마 중 선택하라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소녀에게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엄마들의 갈등이 격해지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빠른 선택을 강요당한다. 관객들의 눈에도 소녀에게 주어진 안전한 선택과 위험한 선택이 모두 옳은 것처럼 보인다.

‘나의 마더’는 인류의 희망을 짊어진 소녀의 고귀한 선택에 대한 이야기와 인류가 멸망하게 된 미스터리가 중심인 SF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물을 동시에 펼쳐놓는다. 두 가지 이야기 모두 흥미로워서 보고 싶은 이야기를 그때마다 선택해가며 봐도 무리가 없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여러 인물과 장르를 균형감 있게 펼쳐나간다.

지금까지 인공지능을 가진 AI 로봇과 친구가 되거나 그 위험성을 일깨워주는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나의 마더’는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의지하고 보호받는 가족 중에서도 엄마의 위치에 로봇을 가져다놨다. 덕분에 로봇보다 인간이 더 낯선 상황이 펼쳐진다. 아무리 고도로 학습된 로봇이어도 가질 수 없는 인간다움과 위험성, 그리고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의외성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상 가능한 마지막 반전까지 가는 과정의 몰입도가 높은 영화다. 배우 로즈 번이 목소리 연기를 한 로봇과 딸, 낯선 인간 등 등장인물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도 인간과 엄마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지난 1월 제35회 선댄스 영화에서 최초 상영됐고, 지난 7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서비스 중이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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