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병원에 도는 퇴사병.."퇴사순번제라도 해야하나"

중소병원에 도는 퇴사병.."퇴사순번제라도 해야하나"

기사승인 2019-07-03 03:00:00

#수도권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A씨는 요즘 병원 분위기가 흉흉하다고 토로했다. 간호사 등 직원들의 잇단 퇴사행렬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A씨는 “간호사들이 대여섯씩 줄줄이 퇴사하고 있다”며 “임신순번제가 아니라 퇴사순번제를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중소병원이 위기에 처했다.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가속화되고, 의료 인력마저 뺏기면서 존재감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 경영상황이 악화되자 남은 직원들도 하나 둘 짐을 싼다. 

3일 병원계에 따르면, 최근 수도권 중소병원을 중심으로 의료인력 부족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그간 중소병원의 인력 수급 문제는 꾸준히 있어왔지만, 최근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면서 수익성은 줄어들고, 스프링클러 설치, 실내공기질 강화 등 각종 규제정책으로 운영비는 늘어난 상황에서 어렵게 채용한 간호사들이 줄줄이 큰 병원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대형병원의 간호 인력 규모는 증가하는 추세다. 쿠키뉴스가 서울대병원 등 상위 대형병원의 간호인력 규모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대비 올해 간호 인력이 서울아산병원은 약 6.9%, 서울성모병원은 약 2.6%, 서울대병원은 약 1.9%, 신촌세브란스병원은 약 9.3% 가량 늘었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간호간병통합병동 1곳을 신설해 간호간병통합병동 간호사만 40여명 늘렸다.

간호 인력이 늘어난 데에는 각각 병원의 경영 방침의 영향도 있었지만, 간호간병통합서비스,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 대책 등 정책 요인이 컸다. 정부는 이 같은 정책의 확대 시행을 추진하고 있어 향후 대형병원의 간호인력 규모는 더 증가할 전망이다.

환자도 대형병원에 몰린다. 건강보험공단의 ‘2018년 건강보험 주요통계’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매출순위 1~5위인 상위 병원의 시장점유율이 8.5%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연도별 전체 의료기관 대비 상위 병원의 요양급여액 시장점유율은 2014년 7.6%, 2015년 7.4%, 8.1%, 2017년 7.8% 등이었다. 전년 대비 전체 상급종합병원의 총 진료비 증가율은 29.8%에 달했다.

의료현장에서는 보장성 강화 정책인 일명 문재인 케어와 의료인력 수급정책의 실패가 중소병원의 위기를 불렀다고 지적한다. 최근 대형병원과 중소병원 간의 의료비 차이가 줄면서 환자들이 대형병원에 몰리고, 의료인력 배출 현황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 중소병원의 인력난을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박진규 대한지역병원협의회장은 “기존에는 상급종합병원에 특진료, 상급병실료, 본인부담액 등에서 차이가 있어 환자들이 쉽게 접근하기에 한계가 있었는데, 이제 비용차이가 없어지니 경증환자들까지 큰 병원을 찾게 됐다”며 “정부는 차이가 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다. 중소병원은 재정부터 인력까지 씨가 마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간호등급제 등 의료인력 수급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시행한 정책도 문제다. 서울에 있는 상급종합병원은 간호사 수가 증가하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인력을 채용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다”며 “어렵게 뽑아놓은 간호사들을 6개월 정도 훈련시키고 나면 서울 큰 병원에 대기 자리가 났다며 빠져나가기 일쑤다”라고 토로했다. 

지방에 있는 병원들은 이미 간호사 채용 자체가 어려운 상태로 접어들었다. 간호사 채용공고를 내도 지원하는 간호사가 드물어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 대체인력 활용과 병동 축소 및 폐쇄  조치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이들은 병원 도산이 시간문제라고 했다.

전남지역에서 종합병원을 운영하는 A원장은 “재작년 중환자실 운영을 중단한데 이어 지난해 응급실도 폐쇄했다. 병동도 축소해 기존에 운영하던 45병상짜리 3개 병동 중 2개 병동만 간신히 운영하고 있다”며 “그래도 작년에는 간호사 3명을 추가로 채용했었는데 올해는 겨우 1명만 채용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서울 대형병원이 간호사 채용을 늘리면 기존 간호사가 빠져나가는 등 영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예 지원하는 간호사조차 없다”고 밝혔다.

의료 보장성 강화 정책이 정부의 일자리정책과 반대로 가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A원장은 “지난해 1개 병동을 폐쇄하면서 직원 20여명을 감축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을 양성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정부의 기조가 유독 의료에서는 거꾸로 간다”며 “지역병원들이 무너지면 환자들도 피해를 본다. 간호등급제 폐지하거나 당장 지역병원의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 보조 인력활용을 일시적으로나마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보장성 강화정책과 대형병원 쏠림 현상 간 상관관계가 통계 착시라고 주장한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예비급여과장은 최근 관련 토론회에서 "공단의 통계 자료는 진료비를 심사하고 지급했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진료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진료비는 약 11% 증가한 것으로 나온다. 동네 병원도 11% 증가했고, 의원급 의료기관도 비슷하게 나온다"며 "정부는 하반기 중에 중간평가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문제가 있는 부분은 수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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