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지역 자립형사립고(자사고) 13곳 중 8곳에 대해 재지정 취소 판정을 내렸다. 평가점수는 물론이고 평가위원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교육당국 태도가 학부모들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9일 경희·배재·세화·숭문·신일·중앙·이대부고·한대부고 등 8개교가 재지정 기준점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 자사고 지정취소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동성고, 이화여고, 중동고, 한가람고, 하나고는 기준 점수 이상을 받아 앞으로 5년간 자사고 지위를 유지한다. 청문 대상이 된 자사고 8교는 오는 22일부터 사흘에 걸쳐 청문회를 진행한다. 이후 교육부 장관이 지정 취소에 동의하면 해당 학교들은 2020학년도부터 일반고로 전환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자사고 취소 결정을 발표하면서 각 학교의 평가 총점을 공개하지 않았다. 점수 공개로 인한 서열화를 피하겠다는 의도이지만 공정성 논란이 일 수 있는 대목이다. 평가 세부내역 전면공개 요구에 대해서는 “향후 청문 대상, 재지정 학교에 컨설팅 등을 통해서 서로 간에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교육 당국 태도가 옳지 않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나왔다. 지난달 20일 경기도교육청은 안산 동산고 재지정 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재지정 기준점수인 70점에 미달하는 점수를 받았다”고만 밝혔다. 동산고가 몇 점을 받았는지, 어떤 부분에서 점수가 깎였는지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신상털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자사고 평가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점도 반발을 사고 있다. 자사고 평가위원은 교육 전문가, 연구원, 교수 등으로 구성된다. 문제는 자사고 운영평가에서 평가위원의 주관이 반영될 여지가 있는 ‘정성평가’ 비중이 이전보다 확대됐다는 점이다. 자사고 운영평가 평가에서 정성평가 항목과 정량평가와 정성평가가 섞인 항목은 각각 34점과 23점으로 총 57점에 달한다. 즉 정성평가 포함 항목 배점은 만점(100점)의 절반을 넘는 셈이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 전북도교육청에 이어 서울시교육청 또한 평가위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평가위원이 재지정 여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꾸준히 요구해왔다. 자사고 학부모들로 구성된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자학연)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가를 빙자해 교육선택권을 박탈하는 자사고 죽이기를 중단하고, 교육감 개인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면서 “자사고 평가 결과와 평가위원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충분한 소통과 협의 없이 교육당국이 일방적으로 자사고 폐지를 추진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지난 3월 서울지역 자사고 학교장들은 재지정 평가를 위한 운영성과 보고서 제출을 거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사고 학교장들은 “평가지표를 설정할 때 사전예고는 물론 한 번도 자사고 측과 협의를 하지 않았다”면서 “올해 서울에서 실시하려는 운영성과 평가는 자사고 죽이기를 노골화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자사고 측들은 지정취소처분이 내려지면 집행정지가처분신청과 행정소송을 낸다는 방침이다.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도 한 학교라도 지정취소 결정되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공동대응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자사고 취소 결정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결정인 만큼 절차와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면서 “교육 당국이 평가위원들에게 사전에 양해와 동의를 구하고 명단을 공개했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