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불거진 일본 불매 운동의 분위기를 스포츠계도 외면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라고 하지만 짙은 반일 기류에 부담이 적잖다.
일본 전지훈련 계획을 세웠던 프로농구 구단들은 최근 앞 다퉈 일정을 변경했다.
서울 SK(마카오)와 고양 오리온(이탈리아)을 제외한 프로농구연맹(KBL) 8개 구단은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불매 운동이 확산되자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결국 전주 KCC가 지난달 중순 가장 먼저 전지 훈련지를 일본에서 필리핀으로 선회했다. 안양 KGC와 인천 전자랜드도 지난달 26일을 전후해 일본 전지훈련 취소를 밝혔다.
울산 현대모비스는 위약금까지 감수하면서 일본행을 취소했다.
일본 시부야와 자매결연을 맺은 현대모비스는 시부야 현지에서 연습 경기를 치르고 훈련을 하며 경기 감각을 끌어올릴 예정이었지만 양국 사정을 감안해 백지화했다. 현대모비스는 해외전훈 대신 다음달 4일부터 강원도 속초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원주 DB 역시 일본행을 취소하는 대신 대만으로 방향을 트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 밖의 구단들도 국내나 유럽 등 다른 지역으로 훈련지를 변경할 방침이다.
KBL 관계자는 “우리가 지난 시즌 말미에 일본 B리그와 제휴 관계를 맺었다. 아직 시작하는 단계라 프로젝트가 진행된 건 없지만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눈치가 보인다”고 털어놨다.
여자 프로농구 역시 4개 구단이 일본 전지훈련 계획을 세웠지만 최근 용인 삼성생명과 부천 KEB하나은행이 취소를 확정했다. 청주 KB와 아산 우리은행도 취소로 가닥을 잡았다.
여자프로농구연맹(WKBL)은 24일부터 31일까지 강원도 속초체육관에서 박신자컵 서머리그를 개최하고 이 대회에 일본 2개 팀과 대만, 인도네이사에서 한 팀씩을 초청할 예정이었다.
관계자에 의하면 WKBL은 일본 구단을 초청하기 위해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을 들였다. 하지만 미쓰비시전기 등 전범기업과 관련된 팀을 초대하는 것은 논란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 7일 이사회를 거친 끝에 초청을 철회했다.
프로배구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여자 프로배구는 지난달 KGC인삼공사가 처음으로 일본 전지훈련 계획 취소를 발표했고, 이어 현대건설이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가지 않기로 했다. 남자 프로배구 역시 한국전력이 일본 전지훈련을 취소했으며, 다른 팀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프로배구 관계자는 “일방적인 취소가 부담으로 다가오긴 한다. 하지만 정세가 급변하지 않는 한 구단들은 전지훈련을 취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프로축구 구단들도 전지 훈련지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
수원 삼성은 오는 겨울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계획 중이었지만 한-일 갈등을 의식해 백지화했다. 해마다 해외 전지훈련 마무리 장소로 일본을 택했던 FC 서울은 ‘일본행 불가’ 쪽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했다. 이 밖의 구단들도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결정을 할 것”이라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
프로야구 구단들은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KT와 키움, NC를 제외한 7개 구단은 매 해 2월 일본 오키나와를 찾아 마무리 훈련과 담금질을 한다. 11월엔 국내에 남는 키움, NC를 제외한 8개 구단이 일본으로 마무리 훈련을 떠난다. 하지만 한일 관계 악화로 캠프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단기 계약을 맺은 구단들은 사정이 낫지만 오키나와 현지와 2~3년씩 장기 계약을 맺은 구단들은 고민이 크다. 특히 나손 아카마 구장을 장기임대한 데다 훈련 시설 확충에 직접 투자까지 한 삼성은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다.
단 삼성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전지 훈련지 변경에 무게를 실었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