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감독 김주호)은 하나의 가설에서 출발한 영화다. 세조실록에 적힌 약 600년 전 일어났다는 40여건의 기이한 사건. 이것들이 실제 일어난 진실이 아니라 누군가 조작해 만들어낸 사건이라면 누가 어떤 이유로 벌인 일일까.
‘광대들: 풍문조작단’은 당시 조선 최고의 권력자인 영의정 한명회(손현주)가 덕호(조진웅)를 비롯한 다섯 명의 광대들에게 풍문을 조작하라고 사주했다는 가설을 세웠다. 연기력과 입담이 뛰어난 덕호를 중심으로 기술과 화약에 능한 홍칠(고창석), 음향전문 무녀 근덕(김슬기), 뭐든 똑같이 그려내는 미술 담당 진상(윤박), 귀신같은 몸놀림의 재주담당 팔풍(김민석)까지 그 면면도 화려하다. 이들은 세조(박희순)가 지나가는 길에 소나무 가지를 들어올리고, 원각사에 황색구름과 꽃비를 내리게 하는 등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임금을 위한 미담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원치 않게 조정의 권력싸움에 휘말리며 목숨을 위협하는 위기를 맞는다.
분명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기이한 사건들이 하나씩 펼쳐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지루하지 않다. 역사책에 적히지 않은 뒷이야기를 전해 듣는 느낌도 든다. 진짜 역사와 숨겨진 역사에 대한 관점을 고민하기도 하고, 중요한 순간 옳은 선택을 내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성장스토리를 그리기도 한다. 풀어낼 이야깃거리와 영상으로 볼거리가 넘친다.
문제는 매력적인 소재들을 유연하게 엮어낼 솜씨 있는 장인의 부재다. 팀을 짜서 마술처럼 사건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궁궐에서 권력싸움을 벌이는 정치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는 것이 치명적이다. 인물들을 극적인 상황으로 몰아붙이는 장치가 부족하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부러 공감하기 어려운 정치 무관심 캐릭터를 내세워 계몽시키는 과정을 2019년에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광대들: 풍문조작단’은 연산군 시대 궁중광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와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대립에 끼어든 관상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관상’(감독 한재림)과 다르다. 두 영화 속 인물들이 어느 순간 정치 세계로 걷잡을 수 없이 휘말리는 것과 달리, 광대 덕호는 밖에서 겉돌며 자신의 신념을 옳다고 착각한다. 상황에 맞춰 선택을 강요당하는 급박함이 사라지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고민하는 느슨한 상황이 펼쳐진다. 조선시대 이야기를 지나치게 현대적인 이야기로 풀어낸 결과다. 결말로 향할수록 느슨함의 정체가 선명히 드러나고 그 끝에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함만 남는다. 무엇을 위해 광대들의 이야기를 지켜봐야 했는지 알 수 없는 결말이다.
배우들의 열연마저 묻히는 영화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뭉쳤지만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광대들은 600년 전 사람들을 속였을지 몰라도, ‘광대들’에 출연한 광대들이 지금 현재의 관객들을 얼마나 잘 속일지는 미지수다. 21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