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간이식, 골수이식하면 뭐합니까. 어려운 치료과정을 이겨낸 환자가 항생제 내성균때문에 어처구니 없이 사망합니다."
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급증하는 항생제 다제내성균 감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주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항생제 내성 문제에 대한 대책이 절실하다"며 의료현장의 상황을 호소했다.
이 교수는 "다제내성균 감염은 환자에게는 심각하고 처절한 문제다. 대부분 중증질환이나 병원에 오래 다니는 환자들이 감염된다"며 "아들의 간을 이식받은 아버지가 회복기를 겪는 중에 내성균에 감염돼 사망하고, 골수이식을 받아 치료가 잘 되었는데 내성균에 감염돼 어처구니없이 사망한다. 실제 여러 병원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치료제를 못 살 정도로 어려운 나라인가. 의료수준이나 경제수준을 봤을 때 충분히 들여와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다른 나라들이 쓰는 약들은 들어오지 않고, 그나마 들여온 약도 제약사가 팔지않으니 현장에서는 답답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항생제 내성(다제내성균)'은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공중보건 분야 최대 위협 중 하나다. 매해 전 세계 70만 명이 항생제 내성으로 사망하며, 2050년에는 연간 1000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부도 지난 2016년 '국가 항생제 내성관리 대책(~2022년)'을 수립, 국내 항생제 사용량 저감화를 위한 다양한 시행 방안을 추진했지만, 항생제 내성 발생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2017년 감염자 수가 10만 여명에 달하며, 90일 이내 사망자는 약 4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새로운 항생제가 나타나면 내성균도 뒤따라 등장하기 때문에 항생제 내성균과의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국내 주요 항생제 다제내성균인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의 법정감염병 신고현황을 보면 2017년 5717명, 2018년 1만1954, 올해 9월까지만 9577명이 신고돼 감염은 점점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계에서는 '항생제 덜 쓰기'도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막상 의료현장에 항생제 내성균 감염 환자가 발생하면 내성을 이기는 치료제가 없어 손쓸 방법조차 없다는 것이다. 한 의료진은 "내성균 감염 문제로 환자나 보호자가 '이제 어떡하느냐'고 물으면 '기도하시라'고 답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내성없는 새로운 치료옵션을 들여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원석 고려대의대 감염내과 교수 "암환자가 사망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합병증이고, 그 합병증이 대부분 감염, 그것도 항생제 내성균에 의한 감염이 크다"며 "항생제를 적게 사용해 내성균 발생을 줄일 수 있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이미 생긴 내성을 없앨 수는 없다. 결국 내성을 가진 환자에 대한 치료방법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내에서 사용가능한 항생제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 의료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2014년 이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된 항생제 신약 13개 가운데 9개가 국내 3상 임상연구를 진행 중이며, 현재 승인돼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는 2개에 불과하다. 다만, 2개 중 1개는 비급여로 부담이 높고, 나머지 1개는 경제성 등의 이유로 제약사가 국내 판매를 포기한 상황이다.
최 교수는 "수가가 낮아서 개발비용을 회수하기 어렵고, 파는 것이 도움이 안된다며 기업이 팔지 않는 경우가 있고, 또 나머지는 비급여의 영역으로 들어가 전문가적 판단이 아니라 비용이 접근성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건강보험 재정 확대의 우선순위가 다제내성균관리, 치료에 대한 보장성 강화로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현주 한양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약은 필요성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며 의견을 같이했다. 배 교수는 "우리 의료보험은 전세계적으로 좋은 제도인데 방향이 틀렸다. 모든 사람에게 의료접근성을 높이는 식으로는 재정을 유지할 수 없다"며 "유럽국가 등은 이미 예전에 허가가 되어 쓰는 약을 우리는 9개 중 2개 밖에 못쓰고 그나마도 1개는 제약사가 팔지 않는다. 허가과정에서 경제성 평가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항생제의 특수성을 고려해 약가평가제도를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이다. 최경호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은 "항생제 내성균 문제에 국가가 어떤 식으로든 나서서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은 큰 틀에서 공감한다. 약제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비용효과성 등을 평가하는데, 경제성 평가라는 허들을 항생제가 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다만, 영국 등 외국도 유사한 약가 평가 제도를 사용하는 만큼 어떻게 합리적으로 풀어가고있는지 찾아서 제도 개선 노력을 해보겠다"고 밝혔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