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떠남을 우려먹는 것처럼 됐네요.” 가수 윤종신은 멋쩍게 웃었다. “떠난다고 얘기한 게 벌써 4개월 전”이라며 던진 농담이었다. 윤종신은 지난 6월 “내가 살아온 이곳을 떠나 좀 더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곳을 떠돌며 이방인의 시선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보려 한다”고 밝혔다. 그간 MBC ‘라디오스타’ 등 출연하던 예능 프로그램을 정리했고, 다음달 ‘이방인 예행연습’을 위해 출국한다.
지난 28일 서울 올림픽로 올림픽공원 올림픽로에서 열린 ‘이방인’ 콘서트는 윤종신이 관객에게 보내는 3시간여의 연서였다. 치장이나 포장 없이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는 의미에서다. 이날 윤종신은 “갑자기 떠나는 건 싫어서, 떠나는 배경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싶었다”면서 “수많은 히트곡을 배제하고, 오늘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노래들로 공연을 꾸몄다”고 말했다.
그 자신도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돌아보면 윤종신의 노래에는 떠남의 징후가 자주 묻어났다. 이날 부른 ‘떠나’, ‘이방인’, ‘출국’(원곡 하림) 등이 그랬다. 그룹 신치림으로 함께 활동하던 2·3대 ‘음악 노예’ 하림, 조정치와 노래하던 윤종신은 “예전엔 ‘뜨고 싶다’, ‘돈 많이 벌고 싶다’며 쓴 노래들인데, 지금 보니 미래의 내 마음을 예측한 가사 같다”고 털어놨다. 하림은 20년 지기 음악 동료를 위해 자신의 2집 수록곡 ‘여기보다 어딘가에’를 불러줬다. 열 마디 말보다 강력한 응원가였다.
10년 가까이 윤종신의 공연을 봐왔지만, 이번처럼 그와 깊이 교감했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에게 사랑을 말하는 ‘오르막길’이나,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던 ‘버드맨’(Birdman), “중간중간 찾아오는 콤플렉스를 견디고 나니까 조금씩 그 보담이 오는 것 같다”며 부른 ‘슬로우 스타터’(Slow Starter) 모두 그가 팬들에게 또 대중에게 보내는 편지 같았다. 무방비할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사랑과 믿음을 갈구하는 이에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기란 어렵다.
윤종신은 4년 전부터 떠남을 갈망해왔다고 한다. 30년 차 가수이자 방송인, 기획사의 대표 프로듀서, 세 아이의 아빠 등의 직책이 가볍지 않았겠지만, 그는 마침내 떠남을 결정했다. 친구들은 ‘늙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선택을 했다’며 윤종신을 응원했다고 한다. 4년 전, “푹 주저앉아 꿰매고 있어 / 너덜너덜해진 나의 상처를”(‘탈진’)이라며 버거워하던 그는 이제 “내 삶의 한가운덴 것 같아/ 깨달은 게 많아 뒤로 빠지기엔/ 좀 더 꿈꾸겠어”(‘늦바람’)라면서 눈을 빛낸다.
그는 11월 1일 ‘이방인 프로젝트’를 위해 한국을 떠난다. 진짜 이방인이 돼, 외로움과 고독함, 떠나감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에도 윤종신은 창작 활동을 꾸준히 할 계획이다. ‘월간 윤종신’도 계속된다. 윤종신은 “낯선 곳에서 잘 버티고 돌아오겠다”면서 “사랑 노래, 이별 노래도 하겠지만 조금 더 달라지고 심화한 모습, 무르익은 음악으로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