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전설적인 팝 가수 스팅을 두고 ‘나이가 무색한’ ‘세월을 거스르는’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은 불성실한 감상이다.
지난 5일 서울 올림픽로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 ‘2019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이하 슬라슬라) 공연 무대에 오른 스팅을 보며 생각했다.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와 그의 음악을, 나도 모르는 사이 연령 따위에 투과해서 봐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그만큼 스팅은 혈기왕성했다. 1시간30여분의 공연 동안 쉬지 않고 내달렸다. 그가 1978년부터 1985년까지 몸담고 있던 록 밴드 폴리스의 노래 ‘메시지 인 어 보틀’(Message in a Bottle)을 시작으로 앙코르곡 ‘킹 오브 페인’(King of Pain), ‘록산느’(Roxanne), ‘넥스트 투 유’(Next to You)까지 18곡을 연달아 들려줬다. 페스티벌 무대였지만 단독 콘서트에 견주는 레퍼토리였다. 거장은 간단한 인사와 밴드 소개로 잠깐 숨을 골랐을 뿐, 짧지 않은 시간 내내 노래와 연주에 열을 올렸다.
스팅은 지난 5월 발표한 ‘마이 송즈’(My Songs) 음반 수록곡 대부분을 이날 들려줬다. ‘마이 송즈’는 제목 그대로 스팅이 ‘인생의 노래’라고 꼽는 곡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엮은 음반이다. 자신의 히트곡을 오케스트라와의 협업으로 재탄생시킨 ‘심포니시티즈’(Symphonicities) 음반과 비슷한 프로젝트로 보일 수 있겠으나, ‘마이 송즈’는 ‘모던’에 방점을 찍었다는 점에서 다르다. 스팅은 앞선 이메일 인터뷰에서 “(음반에 실린 곡들이) 바로 ‘오늘’ 만들어진 음악처럼 들리게끔 만들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공연에서 만난 ‘마이 송즈’의 노래들은 음반보다 훨씬 극적인 분위기로 다가왔다. ‘데저트 로즈’(Desert Rose)의 이국적인 사운드는 스팅의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와 무대매너, 붉은 조명 등과 어우러져 압도적인 인상을 줬다. 스팅의 훵키한 베이스 기타 연주가 돋보인 ‘메시지 인 어 보틀’이나 댄서블한 연주의 ‘이프 유 러브 섬바디 셋 뎀 프리’(If You Love Somebody Set Them Free), 레게풍의 ‘워킹 온 더 문’(Walking on the Moon) 등 관객들을 춤추게 하는 곡들도 줄을 이었다.
공전의 히트곡인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Shape of My Heart)는 이 곡을 샘플링해 만들어진 쥬스 월드의 ‘루시드 드림’(Lucid Dreams)과 매쉬업해 연주했다. ‘잉글리쉬 맨 인 뉴욕’(Englishman in New York)과 ‘필드 오브 골드’(Fields of Gold) 등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곡들이 나올 때마다 객석에선 환호가 일었다. 폴리스의 명곡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Every Breath You Take)가 시작되자 아예 축제가 벌어진 듯 했다. 스팅은 허스키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련하게 노래를 불렀다.
일흔 살을 눈앞에 둔 이 거장은 하지만 자신만의 시간으로 나이 먹어 가는 것 같았다. 젊은이들과의 비교는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 스팅이 한국에 온 것은 이번이 여섯 번째였는데, 이날 ‘슬라슬라’ 공연을 보면서 그의 방한을 또 한 번 기다려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한편 6일까지 이어진 이번 ‘슬라슬라’ 공연에는 스팅 외에도 백예린X윤석철, 칼리 레이 젭슨, 루카스 그레이엄, 이적, 존박, 갈란트, 에디 슐레이먼, 자쿠비 등이 출연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